청주 초정공동체 나기창 생산자의 토종쌀 농사 이야기 5편
추수를 앞둔 9월, 비가 자주 오고 바람이 불어 벼가 많이 쓰러졌습니다. 아니, 거의 다 쓰러졌습니다. 쓰러진 벼들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막막했어요. 농사라는 게 잘 되는 해가 있고 잘 안되는 해가 있다는 걸 알지만, 올해는 유난히 아쉽습니다. 충북의 토종 쌀 품종을 심은 첫해이기도 하고 한살림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농사를 지은 터라 기대감이 좀 컸는데, 수확량이 많이 줄어 들 거 같아 아쉬움이 크네요.
▲ 다 여물지 못한채 쓰러져버린 나기창 생산자의 벼
비바람에 쓰러진 벼
도복이 심한 논은 수확량이 반으로 줄어듭니다. 쓰러진 벼가 땅에 닿으면 수분 때문에 부패하거나 낱알에서 싹이 나기도 합니다. 미질도 떨어지죠. 빠르게 벼를 일으켜 묶어 세우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만, 2~3일간 비가 내렸고 혼자 하기에는 너무나 부담되는 작업이라 계속 망설이고 있었죠.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어 쓰러진 벼를 살펴보았습니다. 백석 품종은 만생종이라 아직 덜 여물어서 일찍 베어버릴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농사짓는 한살림 친구들을 긴급 소집했습니다. 살릴 수 있는 벼는 최대한 살려보자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어요.
쓰러진 벼를 세우는 일
아침 일찍 모여서 만들어 오신 주먹밥과 김치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 다음 벼 세우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벼 4~5포기를 사각형으로 세워서 중심을 잡은 다음 벼의 2/3 지점에 벼 줄기를 끈 삼아 묶어야 하는 일인데, 초보자가 하기에는 어렵고 낯선 일입니다. 사실 저도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어떤 어르신 논에서 벼 세우는 일을 도왔는데, ‘니가 그러고도 농부냐!’ 라고 핀잔을 들을 정도로 이상하게 손에 잘 안 익더라고요. 결과물이 볼품은 없지만, 우리만의 방식으로 벼를 세워 묶으며 마무리했습니다. 벼가 많이 쓰러져서 속상하지만, 저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분들과 함께한다는 기쁨 때문에 맘껏 웃을 수 있었습니다. 새삼 한살림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경제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친환경 농사
경제 논리로 따지면 참 쓸데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품과 정성을 들여 수확해도 제값을 받기가 참 어렵습니다. 좋은 가격으로 판매해 인건비라도 건지면 다행이지만, 쌀소비가 점점 줄어 남아도는 상황이다 보니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농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제 기준에서 벼 생산비를 계산해 보면 마지기(200평)당 순이익이 55~60만 원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올해 제 논에서는 최소 1200만 원을 벌어야 하는데... 아마 무리겠죠?
경제 논리로 친환경 농업을 바라본다는 생각은 버린지 오래입니다. 농지를 보존하고 토종종자를 보존하는 것, 이런 가치를 알아주고 저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농사를 짓습니다. 쌀 적체로 인해 한살림 또한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슬기롭게 극복할거라 믿으며, 10월 추수를 재밌게 해보자 다짐합니다.
*나기창 생산자의 <토종쌀 농사 이야기>는 11월 추수 때까지, 매월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