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초정공동체 나기창 생산자의 토종쌀 농사 이야기 3편
벼는 물만 있으면 잘 자랍니다. 거의 전 생육 기간 동안 물이 필요하죠. 그런 벼에 물을 빼줘야 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중간 물떼기라고 하는데, 벼가 뿌리를 깊게 내리게 하고 웃자람을 막기 위함입니다. 중간 물떼기 시기는 농부마다 다르게 정하지만 보통 이삭패기(어린 이삭이 끝 잎에서 빠져나오는 일) 전 40일부터 30일 사이에 논바닥이 갈라질 정도로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올해 7월엔 사람이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비가 왔습니다. 그래서 물떼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요. 뿌리가 물에 계속 잠겨 있으면 깊게 내리지 못할거고, 빈 이삭이 많이 웃자랄것이라서 생산량이 좀 줄어들 거라 예상합니다.
농부의 숙명
이번 장마 때문에 청주 인근 한살림 농가들 피해를 많이 입었습니다. 둑이 무너진 미호천 주변 농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한 상황입니다. 저는 일부 논이 물이 잠겼고 토종 쌀이 자라고 있는 논 가장자리에 토사가 쓸려 내려오는 아찔한 상황이 있었지만,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자연은 신비롭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말 무섭기도 합니다. 기후 위기를 넘어서 기후 종말이라는 말이 너무나 공감되는 7월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앉아서 걱정만 하고 있을 수 없는 것도 농부의 숙명이겠죠. 비가 그치고 난 뒤엔 계속 논둑의 풀을 깎았습니다.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겐, 반복되는 일상일 테죠. 한낮에는 뜨거운 태양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어 매일 새벽 5시부터 오전 9시까지 풀을 벱니다. 이 일이 사실 가장 힘들고 지루한 일입니다.
반복되는 지루함 속에 위로가 되는 논생물
반복되는 지루한 과정에서 저를 위로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논에 사는 생물인데요. 풀을 베다 마주치는 논둑의 작은 생물들은 만나면 정말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과거에는 논 생태계에 기반하여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수생식물과 논둑 생물은 제거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작물의 수확량을 늘리는 데 방해가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논은 사람이 만든 인공습지이고 겉으로 봐서는 어떤 생물도 살지 않을 것 같지만, 논에는 크고 작은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터전입니다. 그런 생물과 공존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때 힘들고 지루하던 일은 가치 있고 즐거운 일로 바뀝니다. 한살림 생산자이기에 깨달을 수 있는 귀한 경험이죠.
다가올 가혹한 미래
기후 위기로 인해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논생물들과 저에게 더 가혹한 시간일 겁니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기는 참 힘든 것 같습니다. 폭우가 쏟아진 뒤, 이삭거름을 주기 위해 논에 들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쪼록 토종벼가 맞이할 폭염과 태풍 모두 잘 견뎌 화려한 벼꽃을 피우기를 바랄 뿐입니다.
글/사진 청주 초정공동체 나기창
*나기창 생산자의 토종쌀 농사 이야기는 11월 추수 때까지, 매월 연재합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벼 사이에 슬그머니 앉아 쉬는 실잠자리(위)와 메뚜기(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