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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당근 10개 중 1개만 수확할 예정이에요

2022.12.23 (금)

조회수
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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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좌 생드르공동체 오동규 생산자
안녕하세요, 구좌 생드르공동체 오동규 생산자입니다. 부모님께서 쭉 제주에서 농사를 지어오셨고 15년 전 제가 온 이후 친환경 농사를 병행하기 시작했어요. 구좌생드르공동체 구성원 중 한 분이 지인이었는데 ‘미래 먹거리와 환경에 친환경이 훨씬 좋다’며 추천하시더라고요.
사실 이전에는 농약 알레르기로 고생했었어요. 밭일을 하고 오면 두드러기가 났죠. 친환경 농사 초반에는 인건비도 이전보다 더 들고 잡초 잡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니까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전처럼 알레르기도 없고 수확물도 적정 가격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하게 되니까 저도 부모님도 만족하며 친환경 당근, 무, 감자를 농사짓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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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이 아닌 씨앗으로 심어요
당근은 초기에 싹 틔울 때가 가장 어려워요. 그때 가장 큰 수고가 들어가죠. 7월 말에 일주일 동안 당근 씨앗을 파종하고 나면 날씨 때문에 마음이 조마조마해요. 당근은 모종이 아닌 씨앗으로 심거든요. 비가 내리면 땅 표현이 딱딱해져서 발아가 어렵죠. 게다가 발아할 때 35도가 넘어가면 고온 피해로 싹이 죽어버리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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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웠던 올해 당근 농사
농장은 바다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요. 이렇게 바다와 가까운 농장은 종종 조풍 피해가 있답니다. 태풍이 불면 바닷물이 농장까지 올라오는데 이후에 비가 오지 않으면 짠물이 닿아 잎이 다 타버려요. 이후에는 뿌리까지 죽어버리죠.
올가을 당근 씨앗을 심고 나서 가뭄 때문에 싹이 5cm 정도 힘겹게 올라왔을 때였어요. 딱 그 시기에 태풍이 불어닥치고 바람까지 불어 피해가 더욱 심각했죠. 약 4년마다 이런 피해가 있는데 6~7년에 한 번 정도 꼭 크게 피해를 보더라고요. 당근의 90% 정도를 손해 본 해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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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수확을 앞두었지만 조풍 피해로 밭이 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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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 농사가 잘 안된 밭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는 농부는 드물다.

수확량은 10%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날이 추워서 당근이 참 달아요. 온도가 내려가면 작물은 최대한 당을 끌어모아 죽지 않으려고 애쓰거든요. 1월 수확 예정인데, 맛은 기대하셔도 좋아요. 게다가 제주 당근은 부드러운 화산토에서 자라서 맛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죠.
당근밭에 왠 청보리냐고요?
유기재배는 기본적으로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아요. 유황과 자닮오일로 살충제와 살균제도 직접 만들어 쓰고요. 비료 대신 헤어리배치와 청보리를 번갈아 심어주고 있어요. 녹비작물이라고 하는데, 땅을 비옥하게 해주는 작물이에요. 친환경 당근 농사는 관행 농사보다 수확량이 70% 정도밖에 안 돼요. 평수가 넓어도 수확량이 적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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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당근 수확

나의 농사 참고서, 영농일지?
농사를 시작한 이후로 영농일지를 꾸준히 쓰고 있어요. 매년 날씨, 벌레, 병, 방제 방법들을 자세히 기록해두죠. 올해 작물이 병충해를 입거나 날씨로 안 좋으면 작년, 재작년 영농일지를 들여다봐요. 어떻게 대응했었는지, 효과가 좋았는지 확인하고 올해 농사에 적용하는 거죠. 확실히 도움이 많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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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을 나는 제주 당근
다시 올 기회를 기다리며
제게 농부는 두 번째 직업이에요. 이전에는 다른 일을 했었는데 문득 제가 어려서부터 식물 키우는 일을 좋아했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었어요. 그래서 농업 대학에 편입해 열심히 공부하고 지금은 다시 제주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농사짓고 있답니다.
농사는 일만해도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신선한 공기 맡으면서 몸을 움직이는 일이니까요. 마음도 편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죠. 농사가 재미있어서 평생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농부는 1년 농사가 안되었다고 포기하거나 하지 않아요. 올해 잘 안되었어도 내년에 또 기회가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