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참솔공동체 김순복 생산자
안녕하세요! 해남에서 유기농 시금치, 대파, 배추, 봄동을 농사짓는 김순복입니다. 요즘은 시금치 수확이 한창입니다. 살짝 데친 후 참기름에 무쳐 나물을 해 먹어도, 국을 끓이거나 전을 부쳐도, 잡채나 김밥에 넣어도 맛있는 이맘때 시금치. 땅끝 해남 노지에서 비, 바람, 햇빛 맞으며 천천히 자란답니다.
느긋함은 농부의 덕목
서울에 살던 제가 농사를 짓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런데 남편 만나 결혼하고 해남에 온 뒤로 쭉 농사를 지었답니다. 농사는 성격이 느긋한 저한테 너무 잘 맞는 일이었어요. 남편이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때 호기심 가득한 마음에 자꾸 밭에 따라 나갔답니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도 아버지께서 하시던 작은 채소 텃밭을 제가 참 좋아했었어요. 땅에서 먹거리가 나오는 게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죠.
자연의 힘을 믿는 농사
유기농 농사를 짓기 전에는 비료도 쓰고 제초제도 쓰는 관행 농사를 지었어요. 날마다 하는 일이었는데도 농약은 칠 때마다 싫었죠. 결국 사람이 먹는다고 생각하면 찝찝하고 거부감이 들었어요. 어느 날 문득 물음이 하나 떠올랐어요. ‘산들에 저절로 풀과 나무가 자라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는데 왜 농약과 비료가 필요한 걸까?’ 그때부터 친환경 농사법을 공부했어요. 해남 참솔공동체 생산자가 되기 전부터 흙살림에서 농부 수업을 들으며 조금씩 친환경 농사를 실천했죠.
수많은 공책에 새겨진 비결
농사일지도 16년째 꾸준히 쓰고 있어요. 오늘 한 작업, 출하량, 그리고 날씨를 상세히 기록해요. 이 기록이 농사에 큰 도움을 줘요. 지난해, 지지난해, 그리고 올해 날씨 추이를 보면 앞으로의 날씨를 짐작할 수 있거든요. 동네 사람들은 “쟤가 뭐 심어 놓으면 꼭 비가 와.”하고 신기해해요. 하늘이 준 시간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기록합니다.
유기농 노지 농사는 날씨 영향을 많이 받아요. 날씨가 도와주지 않을 때 조바심 내지 말고 느긋해야 해요. 가뭄이 왔을 때는 생명의 힘을 믿으며 기록해온 농사일지와 일기예보를 유심히 살펴요. 꾸준히 물을 주며 보살피다 보면 어느새 비를 맞고 스스로 회복한 대파를 만날 수 있어요. 힘든 시기를 견뎌내도록 포기하지 않고 도와주는 거죠.
감사한 마음으로
사실 제가 시집온 83년도만 해도 해남은 마치 원시시대 같았어요. 물을 길어다 먹고 빨래도 냇가에서 해야 했죠. 어려운 환경에서 아이들 키우고 농사로 생계를 꾸리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려웠던 시절의 농촌을 고스란히 경험해볼 수 있었다는 게 오히려 행운처럼 느껴져요. 감사할 일이 많거든요.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수돗물에 감사하고요, 장작으로 불 때지 않아도 밥해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그림으로 표현하는 삶
철마다 달라지는 풍경, 농장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생명력, 해지고 바람 불고 비가 오는 날씨의 변화들이 제게는 너무나 아름답고 예쁘답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려요. 일상에서 감동했던 순간들을 그림으로 기록하죠. 얼마 전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서 맛있는 동지 팥죽을 해 먹었는데 얼마나 정답고 좋았는지 몰라요. 노인, 젊은 사람 할 것 없이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함께 밭일하다 새참 먹고 쉬는 모습, 호박 수확하던 날, 봄동 캐는 동네 아주머니들을 그림으로 그려왔어요. 요즘은 농사일로 바쁘지만, 그림 그리는 일은 천천히 꾸준히 해나갈 겁니다. 오랫동안 꿈꿔온, 너무나 소중한 일이거든요.
우리 농부들은 어머니 아버지 같은 마음으로 소비자를 생각하며 농사지어 보내드린답니다. 잡수시고 꼭 건강해지세요. 그리고 가끔 농사가 잘 안되었어도 벌레와 수많은 병을 이겨낸 먹거리이니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고 맛있게 드셔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