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주신 마음을 기억하며
잘 키워 보내드립니다
부안 산들바다공동체 김장채소
▲ 부안 산들바다공동체 임홍순 생산자
“배추 정식할 때쯤 태풍 소식이 들려서 혹시나 조합원한테 갈 배추 심을 시기를 놓치는 건 아닐까 싶어 서둘러서 정식을 마쳤어요.” 8월 말 밭에 심은 후 태풍이나 큰 바람이 없어서 다행히 배추는 땅에 잘 뿌리를 내렸고, 하늘이 내려 준 좋은 일기 속에 배추가 큼직하고 잘 자랐습니다. “배추 가운데 부분을 눌러보세요. 쨍쨍하죠? 속이 꽉 찬 거예요.” 손으로 힘을 주어 눌러도 까딱하지 않을 만큼 배추 속이 꽉 찬 게 느껴집니다. 씨앗 파종부터 수확까지 90일을 살뜰히 돌본 덕분입니다.
지난 8월 중부에 집중되었던 폭우로 땅이 잘 마르지 않아 청주, 괴산, 홍천 지역의 김장채소의 정식이 어려워지면서 산들바다공동체에서 한살림 김장채소의 45% 가량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김장이 여전히 우리 식문화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행여나 조합원들에게 보낼 김장채소가 모자라거나 덜 자랄까 정식 시기도 당기고, 사전 예약된 양보다 넉넉히 하게 심어 부지런히 가꿔 11월 말까지 약 11만 5천 포기의 배추가 생산될 예정입니다.
이날 김장채소 밭을 지나칠 때마다 쑥쑥 자라 초록 물결을 선사하는 배추와 무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배추를 반으로 가르니 노란 속이 정말 겹겹이 꽉 들어찼고, 무를 뽑아 베어 무니 아삭아삭 시원한 단맛이 돕니다. 이 배추와 무로 담근 김치는 또 얼마나 맛이 있을까요. “조합원님들이 받으셨을 때, 기분 좋으실 만하게 키우려고 애쓰죠.” 다 큰 자식 바라보듯 흐뭇하게 배추를 바라보는 생산자의 눈길에 뿌듯함이 그득합니다.
산들바다는 공동체 단위에서 함께 수매를 하기 때문에 밭도 공동으로 관리합니다. 서로의 배추 밭을 함께 돌아보며 작황 상태를 확인하고 더 주고, 덜 줄 것에 대해서 조언하며 함께 키웁니다. 서로에게 쌓인 농사 노하우를 나누는 만큼 어느 하나 잘못된 곳 없이 다들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이것이 한살림 생산공동체의 힘이겠지요.
절임배추 가공공장에서도 흐뭇한 광경은 이어졌습니다. 절임배추를 자동으로 손질해주는 기계가 있다는 것에 한 번 놀라고, 생산자분들의 빠른 손놀림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금세 한 통이 채워지는데, 하나같이 모두 노란 배춧잎 속이 꽉 차 있어 보기만 해도 흐뭇했습니다. 잘 자란 배추는 마하탑의 천일염으로 잘 절여져 이제 조합원 댁으로 보내질 일만 남았습니다.
“배추가 남더라도 농사는 잘 되어야죠. 농사가 잘 되어야 인심이 나오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거예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수확한 11만 5천 포기의 배추가 모두 조합원님들 손에 잘 도착해서 올겨울 밥상에 귀한 음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다려주신 마음을 기억하며 잘 키워 보내드리니, 맛있게 드셔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