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도 한살림'은 한살림 물품을 이용하는 전국 각지의 소상공인 조합원 가게를 찾아가는 꼭지입니다.
음식과 이야기가 있는 동네 사랑방 <게으른 부엌>
연희동 사러가마트 주차장 뒤쪽으로 작은 상점들이 모여있는 건물이 있다. 그 곳에 단순하고 작은 간판을 내건 '게으른 부엌'이 있다. 소규모 요리수업을 열고, 케이터링도 진행하고, 매장에서 도자작가들의 작품을 팔기도 하는 그야말로 복합 문화공간이다. 그 곳에서 장정희 조합원을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잡자, 냉장고에서 먹기 좋게 잘라둔 복숭아를 꺼내주신다. 음식 대접을 받으니, 이웃동네 사랑방에 놀러온 기분이 든다.
장정희 조합원은 오래 전부터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해왔다.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요리 잡지에 오랫동안 기고하기도 했다. 요즘은 케이터링이나 음식 관련 컨설팅도 하고 작은 요리 수업을 열고 있다. '부엌이라는 공간이 가족이 모여 소통하는 공간인 것처럼, 동네 한가운데에서 자리한 이곳이 이웃끼리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뜻해서 부엌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요리 수업 뿐 아니라 벼룩시장, 그림 수업 등 작고 재미난 모임들을 열고 있다. 또한 주민들과 지역 먹거리 공동구매를 하기도 한다. 게으른 부엌 냉장고는 주민들이 함께 구매한 식재료 등을 보관하는 공용 냉장고다. 뭐든지 가능한 공간, 그야말로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다.
이야기가 솔솔 피어나는 부엌
여러 재미난 모임들을 열지만 그래도 메인 테마는 역시, 음식과 요리이다. 게으른부엌에서는 일상적으로 요리 수업이 열린다. 요리 수업에는 한살림의 식재료와 지역에서 바로 받아오는 식재료를 주로 사용한다. 장정희 조합원은 귀하고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가 아니라, 누구나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쓰는 요리를 지향한단다. 한살림에서는 조금씩 살 수 있어 좋고, 또 지역 생산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누구의 생산물인지 알수 없는 물품들을 대량으로 유통하는 대형 마트에서 구매하는 것은 지양하고 있단다.
수요일 점심에는 직장인들이 직접 만들어먹는 단품 요리수업 겸 식사회가 있다. 목요일에는 '쿠킹앤토킹' 이라는 수업이 열린다. 영양적인 것 재료적인 것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나누고 이런 게 더 중요해서 '토킹'이란 말을 붙였단다. 이런 시연 수업의 장점은 식재료나 요리법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궁금한 것들을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정희 조합원이 오랫동안 경험하면서 알게된 음식이나 요리에 대한 꿀같은 정보가 술술 나오는 자리이다.
제철 요리를 맛있게 건강하게
이를테면 무화과가 나오는 여름 한철, 무화과를 잘 맛있게 먹는 법을 공유할 수 있다. 무화과를 예쁘게 잘라서 거기에 플레인 요구르트를 살살 얹어 먹으면 무화과 특유의 비린 맛도 상쇄되고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쉽고 간단한 방법이지만, 무화과를 그냥 잘라서 먹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한테도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간혹 지역에 있는 농가들을 컨설팅 하기도 한단다. 아주 간단한 인쇄물로도, 생산물의 특성을 잘 알려내서 사람들한테 판매를 촉진시킬 수 있다. 장정희 조합원은 한살림에서도 이런 것들을 더 많이 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좋은 식재료가 최대한 살려질 수 있도록 하는 메신저같다.
게으른 부엌의 블로그에는 '소소한 레시피' 라는 카테고리가 있는데, 장정희 조합원은 이곳에 게으른 부엌을 오픈하고 그 동안 해왔던 수업, 각 지역에서 오는 먹거리들, 음식들 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소소한 레시피에서는 '가능한 한 제철 식품을 사용하자, 그 다음에 어디에도 없는 재료로 어려운 게 아니라 우리가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하자, 또 시절에 맞는 음식 하자' 라는 장정희 조합원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활동들을 엿볼 수 있다.
한살림 조합원과 함께한 요리수업
2019년에는 한살림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요리수업도 진행했다. 사실 게으른 부엌은 한살림 연희 매장에서 도보로 1분 거리에 있으니 아주 가까운 이웃 가게인 셈이다. 오랜 조합원이기도 하고 동네 터줏대감이기도 하기에 당연히 한살림 조합원 활동가분과도 교류가 있다. 활동가분의 권유로 한살림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요리수업을 열었단다. 한 활동가분이 찾아와 매장 근처에 이런 공간이 있으니, 새내기 조합원들이 모여서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싶다고 제안했단다. 그렇게 네번에 걸친 한살림 조합원과 함께하는 게으른 부엌 수업이 열렸다. 조합원 대상이라고 다른 요리수업과 특별히 다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재료와 가격 면에서 좀더 신경을 썼단다.
게으름의 여유가 있는 관계망
정다운 부엌, 소박한 부엌, 따뜻한 부엌 등 여러 이름이 가능한데 왜 '게으른' 부엌일까. 장정희 조합원이 어렸을 때 읽은 버트런트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사람이 적당히 게을러야 남아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단다. 머리가 좋은데 부지런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일을 만들어서 힘들게 하고 머리도 나쁜데 게으르다면 그런 사람 또한 남에게 피해를 주니, 그냥 적당히 게으른 부엌이어야 된다고 생각했단다.
'게으른 부엌을 운영해서 큰 돈을 벌겠다 이런게 아니니까 적당히 잘 운영하고 있다'고 하신다. 이웃들이 항상 끊임없이 뭘 갖다 주고 그것들을 또 동네 친구들이랑 나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어디선가 보내주시는 물건들을 나누는 반짝 나눔이 종종 뜬다고 한다. 그야말로 주민 방앗간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한시간 정도 시간 중에 두 명의 주민들이 가게를 찾았다. 고창에서 올라오는 유기농 요구르트를 가지러 오셨다. 두 분 모두 한살림 조합원이라고 소개했다. 요구르트를 찾아서 바로 돌아가는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게으른 부엌은 주민들의 필요가 만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주민들이 잠시 게으름의 여유를 부리는 관계망이구나 싶다.
게으른 부엌은 작은 한살림 같다. 지역의 생산지와 얼굴있는 거래를 하고, 좋은 먹거리를 함께 향유하고,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여러 만남을 만들어간다. 인터뷰 하는 내내 '아 우리동네에도 이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들러가고 싶은 곳, 가진 것을 나누고 싶어지는 관계, 서로의 이야기가 있는 시간. 그것은 무엇보다 건강한 요리와 이야기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장정희 조합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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