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박 모종을 키우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한 달간 맑은 날이 별로 없어서 일조량이 적었고, 낮은 기온이 지속돼서 저온장해가 생겼거든요. 피해를 입은 게 전체 대비 40% 정도 돼요. 저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여러 농가도 마찬가지여서 올해 수확량이 크게 줄어들 것 같아요.
피해가 컸던 이유는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육묘장이 낡고 좁아서 이상저온에 대처하기 어려웠던 거죠. 한살림은 생산자가 농사지을 작물 모종을 직접 키우는 ‘자가육묘’를 원칙으로 해요. 농약이나 GMO 우려 없는 건강한 모종으로 농사짓는다는 취지이지만, 개인이 각자 알아서 육묘장을 운영하다 보니 시설이 노후하기도 하고 변덕스러운 날씨와 병충해에 대응할 만한 현대적인 장치도 없는 상태죠.
두 번째는 인위적인 가온을 할 수 없는 생산정책 때문이에요. 이제 삼한사온이라는 게 없어지고 바깥 날씨가 워낙 춥다보니 실내온도를 올리는 데 한계가 있죠. 그나마 육묘장은 보일러라도 틀어서 온도를 맞출 수 있는데, 모종을 밭에 정식한 뒤에는 방법이 없어요. 오늘 한 포기, 내일은 몇 포기 이런 식으로 모종이 죽어가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죠. 하우스 비닐을 6중, 7중으로 한다 해도 기후위기에 따른 이상기후에 대응하기엔 역부족이에요.
↑ 모종을 정식한 후 비닐을 여러 겹 덮어 보온하는 모습
제 생각엔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육묘장을 현대화해야 할 것 같아요. 생산자 개인이 각자 시공하기에는 자본도 기술도 부족하니, 지원사업 등을 적극 활용해 공동육묘장을 운영하면 좋겠어요. 거기서 자기 모종을 직접 관리할 수도 있고요.
한살림 생산정책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대단한 가온시설을 하자는 게 아니라 육묘하고 정식했을 때 열선으로 일부 가온하는 정도만 허용해도 농사짓기가 한결 낫지 않을까 싶어요.
* <2021년 한살림 자주기준서>의 관련 내용
육묘는 자가육묘를 의무화함(자가육묘는 개인육묘를 기본으로 하되, 공동체 내의 위탁 및 공동육묘, 공동체 간의 위탁육묘, 한살림 전체차원의 협동적 육묘까지 포함). 단, 자가육묘 실패 시 사전협의 후 인증기준에 맞는 모종을 구입하여 사용할 수 있음
냉/동해 방지를 위한 긴급 보온 조치를 시설재배작물 공통기준으로 함
- 작물별 외부온도에 따라 냉해/동해로 인한 심각한 작물피해 방지를 위한 목적으로만 보온조치 허용
- 외부온도: 기상청 예보 해당지역 기온을 기준으로 함
- 생산농가는 사용일, 사용시간, 유류(등유) 사용량 등을 기록하여 보고서 제출
- 조치방법: 알코올, 촛불, 동력팬, 열풍기 등 시설에 따라 조치
저는 이제 귀농 6년차, 한살림 생산자가 된 지는 3년차에요. 귀농 첫 해엔 일반농사를 짓다가 무농약으로 바꿔서 인증도 받았어요. 친환경농사를 할 거라면 한살림으로 해보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받아서 한살림 생산자가 되었는데요. 뭐하러 어려운 한살림을 하려고 하냐고 말리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래도 제가 한번 해보자 결심해서 들어온 거죠.
한살림에 들어와보니 아쉬운 점이 하나 있어요. 진딧물을 예로 들면 일반농사하는 사람들은 약을 한두 번 치면 잡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합성농약을 안 쓰니 서너 배는 더 노력해야 진딧물을 잡을까 말까 해요. 다른 병충해들도 마찬가지죠.
그러다 보니 모양이 좀 좋지 않은 걸 어느 정도 감안해주시면 좋겠는데, 흠이 있어도 안 되고 벌레 먹은 것도 안 된다고 하니 먹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도 출하하지 못하고 버리는 게 많아요.
물론 병해충과 상관없이 제대로 여물지 않았거나 시든 농산물을 냈다면 그건 우리 생산자가 잘못한 거예요. 생육과정에서 잘못된 걸 조합원님들에게 드릴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친환경 유기농사를 제대로 하다보면 피할 수 없는 벌레라던가 흠집 같은 건 좀 더 이해해주시고 받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대견한과일처럼 생산과정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인정해주는 우리 한살림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