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송주희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2022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핵사고가 발생한 지 딱 11년이 되는 날이다. 11년, 강산이 변하고도 남는다는 긴 시간이지만 ‘후쿠시마’는 여전히 우리에게 사고의 이름으로 존재한다.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었을 곳에, 지금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오염수와 토양만이 가득 차 있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며 전쟁의 총성이 터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도 마찬가지다. 핵사고가 발생한지 올해로 36년이 되는 체르노빌의 반경 30km는 여전히 방사능으로 인해 사람의 출입이 제한된다.
아직도 누군가는 핵사고의 후유증을 앓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사고의 교훈을 잊은 채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탈핵 정책을 내놓은 지 5년이 지난 지금, ‘탈핵’은 과도한 정쟁화의 대상이 되었을 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오히려 일부 정치권에서는 핵발전이 기후위기와 탈탄소의 대안이며 청정 에너지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은 2084년까지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것임에도 그것이 마치 ‘당장 원전 가동을 멈추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소음들이 아니라, 우리 앞에 산적해있는 진짜 문제들을 마주해야 할 때이다. 대책 없는 고준위 핵폐기물, 부실한 원전 안전, 방사능으로 인한 주민 건강 피해, 초고압 송전탑 건설 문제,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방류 등 풀어나가야 할 숙제들이 매우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고준위 핵폐기물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는가?
먼저,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있는 고준위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대책이 없다.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은 핵발전을 가동하고 나서 발생하는 폐기물로 10만 년 넘게 높은 열과 방사능을 내뿜는 매우 위험한 물질이다. 따라서 인간·자연과 격리하고 임시 저장과 중간 저장을 거쳐 영구 처분까지,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안전하게 관리·보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간 저장은커녕 임시 저장도 어디에,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내리지 못했다. 지금은 고준위 핵폐기물을 원전시설 내부에 임시로 저장하고 있지만 고리, 한빛, 한울원전의 임시 저장시설은 2030년대부터 포화될 예정이다. 지난해 말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제 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 기본계획’에는 ‘부지 내 저장시설’이라는 조항으로 또다시 원전 내에 고준위 핵폐기물을 임시 저장하라는 내용이 담겨 지역 주민과 단체의 반발에 부딪힌 상황이다. 기본계획이 비민주적이고 졸속적인 공론화를 통해 수립됐다는 점도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았다.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는 앞으로 전 국민의 충분한 숙의 및 논의와 민주적인 의견 수렴을 통해 함께 해답을 찾아나가야 한다.
기후위기로 잦아지는 자연재해, 원전은 안전한가?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우리나라 원전이 안전하고 튼튼하다고 홍보한다. 과연 그럴까. 지금도 월성원전 부지에서는 방사능이 누출되고 있다. 월성원전 1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수조에서 결함이 발견되었고 한수원은 20여 년 전부터 이를 제대로 관리해오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원전에서 크고 작은 사고·고장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원전이 가동되기 시작한 1978년부터 올해 2월까지는 총 773건, 2022년 올해에만 벌써 2건의 사고·고장이 발생했다. 그 중에서도 한빛 원전 3·4호기에서는 부실시공으로 인해 200개가 넘는 공극(구멍)이 발견되기도 했다. 또, 2020년 8월에는 태풍으로 인해 고리와 월성원전 8기가 한꺼번에 가동을 멈췄다. 이 사고는 원전이 기후위기로 인해 가속화되는 태풍, 호우 등의 자연재해에 오히려 취약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원전이 기후위기의 해법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방사능과 사고에 노출된 핵발전소 밀집 지역 주민들, 원전은 정의로운가?
또 하나, 원전은 과연 정의로운 에너지원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월성원전 1~4호기가 밀집돼있는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서는 벌써 8년째 나아리 주민들이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자신들의 몸에서, 그리고 어린 손자의 소변에서 방사능이 검출되고 이웃들이 갑상선암과 백혈병에 걸렸지만 한수원은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 이하’라고만 말한다. 이들은 건강 피해를 호소하며 이주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도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이외에도 울산, 부산, 영광, 울진 등 핵발전소가 밀집된 지역의 주민들은 방사능과 사고의 위험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 가동되는 25기의 원전이 모두 소수의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핵발전소가 없는 지역, 특히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서 가장 많은 전기를 쓰는 반면 핵발전의 위험은 지역으로 전가되는 일이 과연 정의로운 일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지적한 문제 이외에도 핵발전과 관련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다. '2022 탈핵대선연대'*는 이러한 현안을 반영하여 탈핵 원칙에 입각한 7대 과제(▲핵발전소 조기 폐로 및 탈핵 법제화 ▲제대로 된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정책 마련 ▲핵발전 규제 강화 ▲지역권한 확대, 시민참여 제도화 ▲방사선 영향과 피해대책 마련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방류 저지 ▲초고압송전탑 건설 중단 및 ‘송주법’ 개정)를 정하고 20대 대선 후보자 7명에게 정책 질의서를 전달하였다. 각 후보들의 답변은 아래와 같다(사퇴한 후보 제외).
얼마 전 일본에서 후쿠시마 핵사고를 직접 겪었던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 분은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1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핵발전소나 기후위기 문제가 ‘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나의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공감한다. 지금 당장은 나의 일이 아닐 수 있지만, 내가 쓰는 전기가 어디서부터 오는지 한 번쯤 생각해본다면 결코 남의 일이 아닐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도, 누군가는 눈과 귀를 닫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 이러한 관심이 모여 우리 앞에 놓인 문제가 조금씩 풀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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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 송주희 님은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에서 매일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해 공부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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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탈핵대선연대’는 지난 2021년 12월 15일 출범해 현재 한살림을 포함한 73개의 단체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번 20대 대선 기간 동안 탈핵의 시급함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대선후보와 차기 정부에 탈핵을 주요 정책 의제로 제도화할 것을 요구하는 활동을 펼쳤습니다. 대선 후보를 대상으로 핵폐기물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우리 동네 핵발전소 건설, 찬성하십니까?’라는 주제로 서울에서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또, 대선후보들에게 7대 과제 정책제안서와 최근 쟁점이 되는 핵발전 관련 3가지 이슈의 동의 여부를 묻는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