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와 양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데 올해 작황이 정말 좋지 않아요. 브로콜리는 지난해 태풍과 가을장마로 밭이 침수되면서 모종이 다 죽어버렸어요. 우리 표현으로는 “녹아버렸다”고 하는데, 결국 1,500평 정도 되는 밭을 다 갈아엎어 버리고 폐작할 수밖에 없었어요.
양배추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요. 침수 피해에 뿌리혹병까지 와서 결구가 하나도 안됐거든요. 게다가 겨울철 온난화 현상 때문에 벌레들이 양배추를 다 갉아먹어서 피해가 더 컸어요. 인건비, 퇴비값, 모종값도 못 건진 건 물론이고 약정량의 50%도 못 채울 정도라 걱정이 큽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 나아가 제주도 채소농사 전체가 그래요. 기후위기로 인한 극단적인 날씨 때문에 유기농이나 관행 할 것 없이 피해를 많이 봤거든요. 특히 해안가 지역은 지대가 낮다 보니 도로에 있는 물까지 다 들어와서 침수는 더 많이 된 반면 배수는 잘 안되어 피해가 더욱 컸어요. 올해 제주 채소농민들이 아주 힘든 상황입니다.
저는 제주에서 태어나 계속 이곳에 살면서 아버지를 도와 농사지어 왔어요. 그런데 올해같이 농사가 안된 경우는 처음입니다. 예전에는 비가 와도 어느 정도 적당히 왔는데 솔직히 지난해는 정말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제주도의 하천은 평상시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인데, 태풍이 온 것도 아닌데 물이 흐르고 있었거든요. 노지농사는 날씨가 안 좋으면 뾰족한 방법이 없어요. 기후위기에 직격탄을 맞는다고 봐야죠. 그렇다 보니 이제 시설농업 말고는 방법이 없는 건가 고민이 큽니다.
기후 때문이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합원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게 너무 미안해요. 그래도 우리는 조합원님들이 많이 신경 써 주시니까 일반 농민들보다 사정이 낫거든요. 올해 더 열심히 해서 지난해에 못한 것을 만회하고, 보내주신 마음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월에는 기장 농사를 시작하려고 해요. 참다래도 조금 지어볼까 하고요. 올해는 날씨가 너무 나쁘지 않기를, 그래서 무탈하게 한 해 농사를 잘할 수 있기를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