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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소비자와 생산자, 부자와 빈자가 함께 넉넉히 먹는 밥상을 꿈꿉니다

2021.10.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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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언가 어긋난 사회에 살고 있다. 맛집이라면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먹겠노라며 찾는 이와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이가 아무렇지 않게 공존하는 사회.
매년 몇 억 원씩 오르는 집값이나 태그 하나 차이로 수백만 원이 왔다 갔다 하는 옷값은 어쩔 수 없다 수긍하면서도 농민의 일 년 노고가 담긴 쌀값, 배춧값은 몇 천 원만 올라도 너무 비싸다며 기함하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농촌과 생산자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는 그 존재만으로도 어긋난 부분을 조금이나마 메워주는 것만 같아 귀하다. 농촌사회학자 정은정 님이 그렇다. 새 책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을 통해 농촌과 농민, 먹거리를 주제로 다시금 말 걸기를 시작한 그를 만났다.


젊은 농촌사회학자로 농민을 만납니다

농민의 딸로 태어나 농촌을 보고 자란 이가 어른이 되어 농촌을 다니며 농민의 이야기를 듣고 적는다. 언뜻 보면 자연스러운 행보 같지만 정은정 님이 처음부터 농촌사회학에 뜻을 두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 전공은 사회학이 아니었는데 농사짓던 엄마가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사회학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생각했어요. 엄마는 여성이자 농민이었는데 이를 사회과학적 용어로 ‘이중 질곡’이라고 하거든요. 엄마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농촌사회학을 공부하게 됐죠.”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사회학과 문을 닫는 대학들이 많은 상황에서 사회학에서도 비주류인 농촌사회학을 선택한 배경이 흥미로웠다. “농촌사회학회 선생님들 이야길 들으면 예전에는 사회학 하면 그냥 농촌사회학이었대요. 국민의 70% 이상이 농촌에 살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요. 농촌이 무너지니 관련 학문에도 돈이 모이지 않고, 그러다 보니 이 분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죠.”
젊은 학자가 많지 않은 농촌사회학계에서 그의 역할은 적지 않다. 젊은 학자인 데다 《대한민국 치킨展》이라는 대중서를 펴낸 덕분일까. 농업과 먹거리를 주제로 한 인터뷰, 강연, 토론회에서는 여지없이 그를 찾는다. 농촌사회학 연구 대상인 농민단체에서도 그는 인기인이다.
“지난주만 해도 강원도부터 부산까지 엄청 다녔어요. 저를 불러주시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야단맞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농촌에서 주로 열리는 강의는 당신들 지금 잘못하고 있고 잘 살려면 바뀌어야 한다고 엄포를 놓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당신들의 답답함이 어디에 기인한 것인지, 다른 지역 농촌에서는 어떻게들 하고 있는지 원하는 이야기를 해드리거든요. 그러다 보니 어르신들이 예뻐해 주시더라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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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희망의 씨앗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가 다니는 농촌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농촌 소멸 이야기가 나온 지 벌써 오래전. 농민 열 명 중 네 명이 65세 이상일 정도로 고령화가 심한 데다 남은 이들도 후계농을 찾지 못해 수십 년 일궈온 농지를 포기하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몸은 죽어라 힘든데 먹고살기는 어렵잖아요. 예전에는 농번기에 일하고 농한기에는 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시설 하우스를 사시사철 돌리지 않으면 수익구조가 맞지 않으니 안온한 농촌 생활과는 거리가 멀죠. 어찌어찌 수익을 낸다고 해도 워낙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가족과 함께 살기도 어렵고요. 30~40대들에게 귀촌하라고 하는데 자녀 교육문제도 해결이 안 되고 아프면 갈 병원조차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그게 쉽나요. 농민기본소득 수준이 아니라 농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집과 농지를 제공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해줘야 해요. 지금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 때문에 귀촌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혹할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한 거죠.”
그는 요즘 대두되는 ‘관계인구’를 또다른 대책으로 꼽았다. 농촌소멸이라는 화두를 우리보다 먼저 고민해온 일본에서 나온 관계인구는 여행 등을 통해 그 지역을 좋아하게 된 ‘교류인구’와 아예 해당 지역으로 이주해 사는 ‘정주인구’ 사이에 있는 이들로 교류인구에서 정주인구로 오기까지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농촌에서 나는 농산물을 꾸준히 구입하거나 정기적으로 오가거나 심리적으로 지지하는 등 다양한 관계성을 지닌 이들을 주민으로 생각하는 거죠.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 주인공이 고향에 내려갈 수 있었던 물적 토대가 어머니가 남긴 집이라면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던 것은 근처에 살고 있는 고모 그리고 친구들과 의 관계 덕분이거든요. 그래서 농민들 만날 때마다 ‘우리가 고모네가 되어주면 안 되냐’고 꼭 이야기해요. 그렇게 관계 맺다보면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생각이 나지 않을까요.”
도농교류로 생산자와 이어진 한살림 조합원이야말로 관계인구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한살림 생산지 역시 고령화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이들을 지지해 줄 수많은 관계인구의 존재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생산자와 함께 차린 생명의 밥상에 초대합니다

오랫동안 농촌과 농민, 그리고 먹거리를 연구해온 그의 눈에 비친 한살림은 어떤 모습일까. “한살림은 생산자에 대한 존중이 있고, 생산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조직이니 농산물을 지킬 수 있죠. 이번에 참깨 농사를 생산자들이 조금씩 나눠 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어요. 저희 아빠도 예전에 농사지으실 때 참깨는 너무 힘들어서 식구들 먹을 것 이외에는 못 짓겠다고 하셨어요. 그런 어려운 농사를 약속해서 실제로 책임지고 나눠 짓는 거잖아요. 생산자와 신뢰로 묶여 있다는 것이 머지않아 정말 큰 힘으로 작용할 때가 올 거예요.”
농업살림이 밥상살림과 생명살림을 뒷받침하는 큰 장점이라고 추켜세운 정은정 님은 한살림을 향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한살림 혼자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사회적경제의 큰 형님으로서 때로는 나누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강의하면서 만난 요즘 청년들은 세 끼를 챙겨먹는 일이 거의 없고, 그나마도 학교식당이나 편의점 음식으로 해치우는 경우가 많아요. 자연히 혼밥을 많이 먹고 먹거리도 질보다는 양을 중시하죠. 유기농, 제철, 집밥, 함께 먹는 밥상 등 한살림이 추구해온 가치를 좇기 어려워진 세대인 거예요. 이들을 위해 바로 먹을 수 있는 1인 가구용 간편식을 유기농 제철 재료로 개발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들을 소비자로 창출하기보다는 대학교 급식문제 해결에 목소리를 보태주고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유부엌이나 지원단체에 먹거리를 기부하는 등의 연대와 지지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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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작가가 10월 18일 펴낸 책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에는 ‘형편에 따라 너무 차이 나지 않게 그럭저럭 골고루 갖춘 밥상을 함께 받는 세상을 위해, 차갑고 서러운 타인의 밥상을 살펴보는 일이 먼저였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땅과 자연을 살리는 유기농산물로 생산자와 조합원이 함께 밥상을 차리는 데 힘써온 한살림은 앞으로 먹거리와 관계의 빈곤에 허덕이는 이웃을 생명의 밥상에 초대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