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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기후위기로 괴로워하는 그대에게

2021.10.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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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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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농업과 식량 위기

기후위기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요즘이지만 실제로 체감하는 분이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더우면 에어컨 켜고 추우면 보일러 켜면 되는 사람들에게 기후위기는 먼 나라, 나와 다른 사람들 이야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실감하는 순간은 식량위기가 올 때라고 합니다. 장을 보러 갔는데 원하는 식재료가 없다거나 식당 메뉴가 너무 비싸다고 느끼는 순간일 것입니다.
식량위기가 왔다는 것은 농업이 먼저 타격을 받았다는 이야기겠지요. 실제로 농업은 기후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으며, 특히 친환경 유기농업은 관행농업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노지재배가 기본이기에 홍수, 폭염, 냉해 등 이상기후에 더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하루 만에 갑자기 기온이 12℃ 내려가 수확기에 냉해를 입었을 농민의 한숨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기후가 변하면서 아열대성 해충이 늘어나는 것도 합성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업에 골칫거리가 됩니다. 국내에서 제철에 맞게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근간으로 하는 한살림에는 기후위기가 여느 곳보다도 더 도전적인 상황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최근의 긴박한 기후위기 상황

기후위기는 더 이상 50년 후, 100년 후의 일이 아닌 현재 진행 중인 사건입니다. 1989년부터 세계 과학자 수백 명이 참여하여 기후위기에 대한 연구를 종합하고 미래 시나리오를 예측하여 보고서를 내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3년 전 펴낸 특별 보고서에서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0.85℃ 상승했으며, 1.5℃보다 더 상승하면 지구시스템이 불가역적으로 변하여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1.5℃에 도달하는 시점을 2030년에서 2052년 사이로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8월 초, 여섯 번째 보고서의 일부가 나왔습니다. 최근 보고서에서는 현재 1.09℃가 상승했으며, 1.5℃에 도달할 시점이 훨씬 앞당겨져 2021년에서 2040년 사이일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 날이 생각보다 더 빠르게 우리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피부에 닿기까지의 시점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농민들과 저소득층, 저개발국가에게 기후변화는 이미 진행되어 그 한복판에 서 있는 사건이며, 부유한 이들에게는 그 시점이 좀 더 뒤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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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감과 죄책감을 넘어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다수의 사람들은 두려움과 절망감에 압도당합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고 인류는 곧 멸망할 것 같습니다. 부모들은 어린 자녀가 살아갈 세상을 걱정하고 청년들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고 빨리 뭔가 변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집니다. 그러나 TV 광고에서는 여전히 온갖 물건을 사라고 유혹하며 더 많은 소비를 부추기고 사람들은 코로나19를 핑계로 더 많은 일회용 쓰레기를 만들어냅니다.
여기서 묘한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왜 한쪽에서는 인류의 멸망을 부르짖고 다른 쪽에서는 무감각하거나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행동을 부추기지? 나만 이상하고 예민한 사람인가?’ 하는 자괴감도 생깁니다. 동시에 나 혼자 아득바득 뭘 해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무력감이 생깁니다. 사람들이 환경운동 캠페인을 불편해하는 이유는 계속 혼나기 때문이랍니다. 이것이 옳은 길인데 너는 왜 그렇게 살지 못하냐고 훈계하고 다그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미안하고 부끄러운데 죄책감을 느끼는 부분을 정곡으로 찔려 자꾸만 피하고 싶어집니다. 이런 불편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공감하면 좋겠습니다

사실 기후위기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은 이미 자신 안에 있습니다. 다만 절망과 좌절로 눈이 가려져 그게 해법인지 계속 의심하고, 해봤자 안될 거라는 무력감에 사로잡힐 뿐입니다. 머리로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몸이 따라가지 않고 사회가 도와주지 않습니다.
너무 힘든 날은 마음껏 울어도 좋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런 감정을 함께 느끼는 이들과 나누면 좋겠습니다.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고 훌륭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헤쳐 나가야 하는 우리는 서로에게 잔소리꾼이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심리상담가이자 지원자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너무 올바른 길을 찾으려고 자신과 타인을 억압하기보다는 ‘너도 그래? 사실은 나도 그래. 우리는 비슷하구나’ 하고 서로의 약점을 드러내며 ‘기후우울증’에 공감하면 좋겠습니다. 어려움을 표면으로 드러내어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같이 치열하게 찾아가면 좋겠습니다.

냉정해지면 좋겠습니다

어려움의 실체가 드러나고 감정을 충분히 나눌 수 있다면 실천할 동력이 생깁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제를 인식할 때는 분노와 감성이 필요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지역한살림 한 지부에서 열린 포장재 간담회를 참관했습니다. 다수 조합원들은 포장재 문제에 대한 조급함과 궁금증을 쏟아내었습니다. 포장특별팀에서 일하는 분들이 그간의 노력과 생산현장에서 부딪히는 현실적 과제들을 하나씩 조곤조곤 설명하자, 조합원들의 조급함은 감사와 신뢰와 결연함으로 바뀌었습니다. 같이 해결해야 할 일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대안을 찾아가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낱개판매 매장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지만 한편으로는 생산자들이 공들여 생산한 농산물이 자칫 음식물쓰레기로 버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산과 유통 전 과정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필요합니다. 당위적이거나 낭만적인 답이 아니라 어떤 방식이 실질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생태적인지 신중하고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했다는 데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할 때 더 생태적일 수 있는지 끊임없이 평가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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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중에는 이제 더 이상 개인의 실천은 소용없다고 극단적으로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혼자 하는 일이 어렵고 미미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커다란 변화는 결국 누군가 혼자 시작한 일에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누군가는 절박함에서, 누군가는 더 나은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으려고, 또 누군가는 그냥 더 재미있고 행복하기 때문에 이 길을 걷습니다. 공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가면 어려운 길도 조금은 즐거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