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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문턱 없는 밥을 함께 먹어요

2020.11.29 (일)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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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2월호(639호) 소식지 내용입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 꿈을 위해 지금까지 ‘교육’을 방편 삼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안학교에서 10년 정도 아이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김포장애인야학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2010년께 한살림 조합원이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제 주변에 한살림 조합원은 거의 없었고, 생물학적 남성이자 20대 중에서는 더욱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요즘은 물품이용에 그치지 않고 기후위기 대응과 연대활동에도 함께하려 합니다. 매장에 가기 전 재사용병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옷되살림운동을 중요한 연례행사로 한 지 오래입니다. 얼마 전 우유갑에 이어 멸균팩까지 수거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너무 기뻐 동네방네 알리기도 했습니다. 재사용과 재활용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한살림이 먼저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줘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물론 예전보다 늘어난 소포장 및 즉석조리식품을 보면 가슴 한쪽이 무겁기도 합니다. 무포장 물품이 늘어나 비닐봉지나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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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는 김포장애인야학(이하 ‘야학’)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지내던 중증장애인들이 독립하여 스스로 만든 공간입니다. 활동 초기에 야학을 왜 만들었는지 물어봤을 때, 자신 역시 중증장애인인 교장선생님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나왔을 때만 해도 거주할 집과 활동지원서비스만 있으면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나오니 전동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또 “사회에 나와 필요한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배움을 위한 공간 자체가 없어서 직접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상황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야학 학생들과 밥 한 끼 먹으려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한 시간 넘게 찾아다녀야 하고, 삶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밥도 먹고 공부도 할 수 있는 야학은 그러한 필요가 모여 탄생했습니다.

물론 아직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특히 먹을거리가 그렇습니다. 처음 야학의 급식을 마주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한살림 물품을 나름 오랫동안 이용해왔던 터라 ‘누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한 먹을거리인지 관심이 많은 저에게 야학의 급식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후원받은 지 1~2년이 지난 쌀로 지은 밥에 중국산 김치가 기본이었고, 장류와 식용유 등 부재료 대부분도 값싼 수입산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야학 학생들은 급식을 좋아했습니다. 시설에서는 밥과 반찬, 국을 한 그릇에 모두 말아서 주는 경우가 많은데, 야학에서는 자기가 먹고 싶은 반찬을 원하는 방식으로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권리조차 쉬이 누리기 어려웠던 이들에게 좋은 먹을거리는 어쩌면 너무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먹을거리만큼 정치적이며 양극화되어 있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요.

저도 학생들과 함께 급식을 먹었지만 ‘출처가 불분명한’ 먹을거리에 손이 선뜻 가지 않았고, 특히 김치는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좋은 먹을거리를 학생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롯이 후원으로 운영되는 야학급식의 특성상 하늘에서 무언가 뚝 떨어지지 않는 이상은 이 답답한 상태가 개선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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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한살림 소식지에 안내된 ‘한살림재단 2020 먹을거리 돌봄사업’ 소식을 발견했습니다. 소식을 접한 것이 마감 하루 전날이어서 관련 서류를 준비하는 데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 추천을 받아야 했는데 주말에 연락해 서류를 당일 달라고 요청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원 신청서를 보내고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냈는데 다행히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급식에 드는 비용 모두를 지원받지는 못했기에 매번 고민이 많았습니다. 조리의 근간이 되는 장류와 기본 양념만큼은 한살림 물품으로 이용해야겠다고 결정하고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소금, 들기름, 식용유 등을 중심으로 공급받되, 그달 지원금이 남거나 명절이 있으면 추가로 식재료를 구입해 식단을 짰습니다.

한살림 식재료만을 사용한 급식주간을 운영한 적도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었는데 야학 학생이나 조리사, 상근자 모두 시큰둥한 반응이었습니다. 한살림 급식주간인 것을 몰라서 그러나 싶어 “이번 주는 한살림 식재료로 만든 급식이니 맛있게 드시라”고 콕 짚어 강조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학 구성원 중 한살림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얼마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의미 있는 한살림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싶습니다. 야학이 위치한 김포에는 한살림 매장이 한 곳밖에 없는데다 시설에 사는 중증장애인이 한살림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땅을 살리는 농사, 생명의 먹을거리 등 한살림의 가치는 어떤 이에게는 너무나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렸으리라 짐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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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 돌봄 지원을 받은 지 열 달이 지난 지금은 야학구성원 대부분이 한살림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식재료를 가지러 한살림 매장을 처음 찾은 상근자도 있고, 한살림 온라인 장보기를 보고 필요한 물품 구입을 요청하는 조리사도 있습니다. 나의 한살림이 우리의 한살림이 되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야학은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불안감이 극도에 이르렀던 올해 상반기부터 임시휴교를 하고, 교육청에 요청해 긴급 돌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살림 식자재로 만든 반찬을 학생들 집집마다 배달하면서 얼굴도 보고 고립감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한살림 반찬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지만 양이 충분하지 않아 못 받은 학생에게는 볼멘소리를 듣기도 한답니다.

야학 활동가로서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먹을거리 돌봄을 통해 한살림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지만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에게 한살림은 아직 문턱이 높습니다. 한살림이 모두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더 노력했으면 합니다. 매년 4월 20일에 열리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집회에서 한살림 깃발을 볼 수 있다면, 거주하는 지역에 매장이 없거나 친환경 먹을거리를 구할 돈이 없는 이들도 한살림 물품을 쓸 수 있다면, 장애인도 더욱 편안하게 조합원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면 참 감동스러울 것 같습니다.

2020년 김포장애인야학은 한살림 덕분에 좋은 먹을거리로 지은 급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한살림이 내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따뜻하고 든든한 밥을 지어 소외된 이들과 나누면 좋겠습니다. 고봉밥처럼 넉넉한 후원과 그에 담긴 마음을 기대하겠습니다.


글을 쓴 장진우 님은 한살림 쌍화차와 절편을 아주 좋아하는 조합원입니다. 교육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대안교육운동을 시작했는데, 오히려 많이 배우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대안학교에서 만난 이들과 함께 책모임,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며 김포장애인야학에서 중증장애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