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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어획부터 가공까지, 좋은 멸치란 이런 것

2020.07.2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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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8월호(635호) 소식지 내용입니다.

짙푸른 여름바다에서 끌어올린 그물 안에는 은빛 생명들이 눈이 시리도록 반짝였다. 그물에 매달린 멸치를 투박한 손으로 탈탈 후리며 환하게 웃는 어부들의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와 멸치의 흩날리는 은빛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금어기를 지내고 난 7월의 첫날 해성씨푸드의 멸치 조업 현장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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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위에서 바로 삶은 신선함

그물을 수면에 수직으로 펼치고 조류를 따라 흘려보내다가 멸치가 그물코에 꽂히면 잡는 ‘유자망’, 그물을 육지와 연결해 설치하고 나중에 거두는 ‘정치망’, 빠른 조류를 이용해 잡는 전통 어법인 ‘죽방렴’ 등 멸치를 잡는 방식은 다양하다. 해성씨푸드는 멸치 어군을 따라 그물을 끌고 가서 잡는 ‘기선권현망’ 방식으로 잡는다.

기선권현망 선단은 멸치 무리를 찾는 어군탐지선 한 척과 그물로 멸치를 잡는 어망선 두 척, 그리고 번갈아가며 잡은 멸치를 삶아 육지로 옮기는 가공선 두 척, 이렇게 총 다섯 척의 배로 꾸려진다. 이날의 멸치조업은 거제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의 바다에서 시작됐다.

선두로 나선 어군탐지선의 어로장이 다섯 대의 레이더로 바닷속 멸치 무리를 찾아내고 “투망!”을 외치자 뒤따르던 어망선들이 간격을 벌리며 폭이 2km가 넘는 그물을 던지고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되었을까. 어느새 선단의 가장 뒤로 돌아간 어군탐지선이 그물 속에 멸치가 어느 정도 모였다는 신호를 주자 두 어망선은 사이에 배 한 척이 들어갈 정도로 간격을 좁히고 기중기로 그물을 끌어올렸다. 끌어올린 그물 속 가득 찬 멸치들은 피시펌프로 빨아들여 가공선 안의 큰 수조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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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선에서는 모든 과정이 조금의 틈도 없이 진행됐다. 긴 장화를 신고 수조 안으로 들어간 어부가 쪽대그물로 멸치를 퍼올리자 다른 어부가 납작한 멸치판을 대령해 그 안에 멸치를 얇게 폈다. 쪽대그물 하나 분량의 멸치가 멸치판 하나에 딱 들어차니 한 사람은 쉬지 않고 쪽대질을 하고, 다른 사람은 연신 멸치판을 댔다. 멸치판이 열 개 남짓 쌓이면 또 다른 어부가 쇠사슬을 걸고 옮겨 길이가 10m쯤 되는 솥에 담갔다.

멸치를 삶는 일은 수십 년간 그 일을 해온, 적정한 염도와 삶는 시간을 몸으로 아는 어부가 맡았다. 솥 안을 이동하며 3분 내외로 삶은 멸치판은 다시 다른 어부가 이끄는 쇠사슬에 매달려 가공선 뒤편에 차곡차곡 쌓였다.

멸치판으로 가득 찬 가공선은 육지의 건조장으로 물길을 돌렸다. 이날 잡은 멸치는 냉풍으로 12~24시간 동안 바짝 말린 후, 1포(1.5kg) 상자에 담은 채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다시 소포장되어 조합원에게 공급할 예정이다.
“멸치는 성질이 급해 잡힌 지 5분이면 죽어버려요. 잡자마자 배 위에서 바로 삶지 않으면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지죠. 염도가 낮으면 여름철에 상하기 쉽고, 높으면 너무 짜서 먹기 어려우니 적절한 염도와 시간을 맞추는 게 기술인데 그 일을 오랫동안 하신 분이 맡고 계셔서 믿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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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와 맞닿은 반백년의 깊이

해성씨푸드는 이광술·이정훈 생산자 부자(父子)가 힘을 모아 꾸려가고 있다. 이들 부자의 삶은 오래도록 멸치에 닿아 있었다. 해성씨푸드의 전신인 대구상회가 1976년 설립되었으니 어림잡아도 44년,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였다.

“원래 고향은 대구인데 아버님 때부터 건어물 유통을 했어요. 제가 남해안을 돌아다니며 좋은 물건을 모아서 화물택배로 부치는 방식으로 했죠. 1973년 즈음 통영에 정착했고 이후 2~3년간 멸치며 새우 등을 떼다 팔았어요.” 이광술 생산자가 당시를 술회했다.

대구상회가 설립될 무렵 이광술 생산자는 통영 수협의 멸치중매인이 됐다. 당시만 해도 텃세가 심한 통영에서 외부인으로 중매인이 된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토착민들과의 관계맺음이 얼마나 깊었는지, 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한살림과의 만남은 1991년 이뤄졌다. 규모가 작았던 시절이라 공급량과 이문 모두 많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당시 한살림 내에 멸치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보관시설도 변변치 않았다는 점이다. “멸치는 보관이 생명이라 상온에 두면 색이 누렇게 변하고 맛도 떨어지거든요. 분명히 만 원짜리 멸치를 보냈는데 안 팔려서 반품한 것은 이천 원짜리가 되어 있더라고요. 속상해서 공급 못 하겠다고 했는데 ‘후손들을 위해 우리 바다 먹거리를 지켜달라’고 몇 번이나 말려서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죠. 지금 생각하면 계속한 게 참 다행이다 싶어요.”

중매를 통해 좋은 멸치를 모아 한살림에 보내던 해성씨푸드는 2014년 멸치선단을 인수했다. 이정훈 생산자는 “멸치를 잡는 것부터 삶고 말린 뒤 보관하고 소분 및 포장하는 일까지 통틀어서 하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해성씨푸드가 유일하다”며 몇 번이고 강조했다.

“우리는 잡자마자 배 위에서 삶고, 배가 닿는 건조장에서 말려서 바로 냉동창고에 보관할 수 있잖아요. 잡은 다음날 경매에서 낙찰받고, 소비지가 밀집한 경기도 인근 냉동창고로 이동해야 하는 여느 멸치와는 다를 수밖에 없죠. 그뿐인가요. 멸치 품질도 확연히 달라져요. 어촌에서는 소매인이나 중매인보다 선주의 힘이 더 세요. 멸치에서 담배꽁초가 나오거나 삶을 때 소금을 많이 뿌려도 중매인이 아무 말도 못하죠. 그런데 우리는 선단을 직접 운영하고 있으니 잡는 과정에서도 위생이나 신선도를 더 챙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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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멸치를 위한 이유 있는 고집

좋은 멸치란 무엇일까. 이정훈 생산자는 ‘기름기가 많아서 생기는 누런빛이 아닌 은빛을 띠고, 맛을 봤을 때 너무 짜지 않고 은근한 단맛과 고소함이 밴 멸치’를 꼽았다. 눈으로 보기에 좋은 멸치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여럿 있겠으나 맛과 모양, 신선도까지 갖춘 좋은 멸치를 생산하기 위한 방법은 하나다. 하면 좋을 것 같은 것은 꼭 하고, 해도 되나 싶은 것은 절대로 피하는 것. 그런 점에서는 유기농사를 짓는 농부의 고집과 다르지 않다.

“삶을 때 소금을 많이 치면 멸치가 쉬이 상하지 않고, 은빛이 선명하게 나요. 경매장에서는 짧은 시간 외관만 보고 판단하니 정말 좋은 멸치인지, 쓴맛이 날 정도로 소금을 많이 친 것인지 확인하기 어려워요. 그러니 시중 어선에서는 일단 소금을 많이 치고 보죠. 그것도 대부분 중국산으로요. 우리는 염도를 최소한으로 하고 국산 천일염을 써요. 말리는 것도 보통 20마력짜리 냉풍기로 건조하는데 저희는 30마력짜리로 바꿨어요. 말리는 시간이 짧아지면 그만큼 멸치의 품질이 좋아지거든요.”

삶고 말릴 때뿐만이 아니다. 해성씨푸드의 멸치 소분장에 가면 그 꼼꼼함에 자못 놀란다. 네 명이 쉬지 않고 육안검사를 진행하는 것을 시작으로, 작은 이물질이나 멸치가루를 제거하는 풍력선별기, 멸치와 다른색 이물질을 구별하는 색채선별기, 금속을 잡아내는 금속검출기를 거쳐야만 비로소 한살림 물품으로 포장된다. 여기에 여느 한살림 수산물과 마찬가지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방사성물질검사까지 더해지니 신뢰가 안 갈 수 없다.

“육안 검사가 전부인 업체가 많은데 풍력선별기, 색채선별기, 금속검출기 등의 설비를 두루 갖춘 곳은 우리가 거의 유일해요. 한살림에 내는 것은 그렇게 선별한 것들 중에서도 최고를 고른 것입니다”라는 이정훈 생산자의 말에서 넉넉한 자부심과 애정이 느껴졌다.

글·사진 김현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