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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생산지의 봄 ㅣ 오직 봄과 함께 움직이기를 바라요

2020.03.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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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4월호(631호) 소식지 내용입니다.

봄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지만 코로나19로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요즘입니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 속에서도 뭇 생명들이 제 나름의 꼼지락거림으로 새봄의 움틈을 준비하듯이, 서로 거리를 두고 있는 우리 안에도 봄은 이미 왔습니다. 자연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도 이미 싹이 돋고 때가 되면 열매를 맺을 것이기에 우리는 매일 ‘그래도 희망’이라 말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상을 일상답게 보내기 쉽지 않지만 어디에 있든 4월 봄볕 속에서 따사롭고 건강한 나날들 보내길 바랍니다.
모두,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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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평이 넘는 하우스에서 참다래를 키우다보니 겨울은 가지 전정과 물품 출하로 무척 바빴습니다. 다행히 이번 겨울이 혹독하게 춥지 않아서 농사일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참다래 출하를 마무리할 즈음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됐습니다. 생산지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일상이 이어졌습니다.

안타까운 소식들이 무색하게도 3월을 넘기니 남쪽 끝 고성에는 온갖 봄의 빛깔, 봄의 바람, 봄의 소리들로 가득합니다. 시끄러운 것은 인간 세상뿐인 듯, 봄은 모든 것을 느긋하게 하고 마음을 풍요롭게 하네요. 덕분에 농부들도 잠시 동안 근심을 덜고 눈앞의 작은 것에 감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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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함께한 참다래의 나무눈들은 출발선에 서 있는 마라톤 선수처럼 겨울 동안 정리해둔 가지에서 새 시작을 준비 중입니다. 농원 곁에서 홀로 꽃 피는 민들레는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하고, 노란 갓꽃의 아름다움은 농원의 반려견 다래 군의 걸음도 멈추게 합니다.

코로나19가 봄을 막지 못하듯, 농사의 때를 놓칠 수 없는 농부들은 오늘도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지금 농원에서는 머위와 곰취 출하가 한창입니다. 농원 식구들과 아랫마을 할머니들이 열을 맞춰 재빠르게 수확합니다. 보드랍고 손바닥만한 녹색 잎들을 소쿠리에 가득 담자마자 혹시 볕에 마를까 노심초사하며 바로 포장지 속에 넣지요. 할머니들은 손 바쁘게 일하면서도 멀리 사는 자식이나 손자들 걱정도 잊지 않습니다.
머위와 곰취 등 채소 출하가 마무리되면 참다래 꽃이 피는 4~5월이 옵니다. 이때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꽃분을 채취해 수정하는데, 1년 농사 중 가장 중요한 시기죠. 부디 코로나19 사태 종식이라는 좋은 소식과 함께 참다래 수정 작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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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원에는 태어난 지 갓 한 달 된 아기 돼지가 있습니다. 강아지처럼 뒷다리로 배를 쓱쓱 긁어대며 최근에는 봄에 돋아난 어린 풀에도 욕심을 내는데, 이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습니다. 봄은 그 어떤 작은 생명도 사소하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기에 참으로 고마운 계절 같습니다.

조합원과 함께하기로 되어 있던 봄 행사들은 취소됐지만, 멀리서나마 자연에 기대어 사는 농부의 이야기를 전하며 안부를 묻습니다. 약해지지 마시고 모두 힘내시기를, 오직 따스한 봄과 함께하시기를요.

김찬모 고성 공룡나라공동체 생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