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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동물을 생각하고 나무를 지킵니다

2020.01.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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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고집이 있는 사람이 좋다.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일에 고집을 부리되 그것이 삶을 관통하는 실천으로 이어지면 더욱 좋다. 그 실천이 나를 돌아보게 하고 불편하게 만든다면 가장 좋다. 얼마 전 그런 사람을 만났다.

동물을 좋아해서 그와 관련된 책만 내는 출판사를 만들고, 숲을 해치지 않기 위해 재생종이로만 출판하는 사람. 날짐승의 깃털로 속을 채운 겨울 점퍼를 입지 않기에 추위에 웅크리며 다니고, 한때 좋아했던 고기를 밥상에 놓지 않기 위해 애먹는 사람. 1인출판사 책공장더불어의 김보경 대표는 그의 말마따나 “동물을 만나며 겨우 좋은 사람이 되었는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불편하게 살기로 결정한” 그런 사람이었다.
김보경 대표를 만난 때는 호주 전역에 일어난 산불이 다섯 달째 이어진 무렵이었다. 인간의 욕망이 부른 기후위기가 원인이 된 산불로 서울 면적의 160배나 되는 숲과 들이 재로 변했고, 그곳이 터전이던 10억 넘는 생명이 스러졌다. 그래서일까. 재생종이로 책을 만들게 된 이유로 “숲을 지켜야 동물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펴낸 책의 수만큼 세상도 변합니다

그가 책공장더불어를 차린 것은 2006년. 여성지, 패션지 등 잡지기자를 10년 넘게 하다가 건강 문제로 그만둔 이후 새로운 길이 펼쳐졌다. 그를 이제까지와 다른 길로 이끈 것은 오래도록 키우던 반려견 ‘찡이’였다.

“찡이는 1993년부터 같이 살던 반려견인데 나이가 들면서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참고하려는데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나온 동물책 내용은 ‘개를 고를 때는 코가 촉촉한 것이 좋다’ 수준이었어요. 반면 답답한 마음에 찾아본 외국책들은 내용이 알차서 놀랐죠. ‘이런 책을 소개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무턱대고 출판사 등록을 했어요. 이 세계가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으니 용감하게 뛰어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하.”

초기에는 반려동물과 교감하는 이야기 위주였던 책공장더불어 책의 주제는 동물원 우리 안의 전시동물,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자라는 농장동물, 해부나 독성실험에 이용되다 버려지는 실험동물 등을 거쳐 동물권으로까지 나아갔다. 그렇게 나온 책이 벌써 48권. 동물 관련 책만 내는 1인출판사라기엔 믿기지 않는 분량이다. 길어진 책의 목록만큼 동물을 보는 그의 세계는 확장됐고, 같은 기간 한국사회의 동물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동물단체들과 개 식용 반대 집회를 하고 나서 아무 생각 없이 고기를 먹으러 가곤 했어요. 반려동물을 생각하면서도 농장동물까지는 그 마음이 미치지 못한 거죠. 지금은 동물단체에서 활동하시는 분들 중 상당수가 채식을 하시더라고요. 인식이 달라지니 식생활도 변하는 거죠. 애완동물이라는 말 대신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보편화된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러한 변화의 배경에서 김보경 대표가 차지한 비중은 얼마나 될까. 분명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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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생각하며 재생종이를 이용합니다

책공장더불어가 특별한 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재생종이로만 책을 낸다는 것. 언뜻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출판사에서 재생종이를 사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종이 종류가 다양하지 않을뿐더러 힘들게 골라도 수급이 쉽지 않고, 종이가루가 많이 일어나 인쇄소에서 기피한다. 게다가 어렵게 인쇄하더라도 색이 어두워 헌책 같은 느낌이 난다. 실제로 책공장더불어 책 대부분에 사용하는 재생종이 ‘중질지’는 100% 폐지로 만들어 환경에는 도움이 되지만 다소 거칠고 투박해 갱지 느낌이 난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독자들의 반응이었어요. 온라인서점에서는 ‘이 좋은 책이 왜 여기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더 좋은 종이로 다른 출판사에서 다시 냈으면 좋겠다’는 댓글도 달렸어요. 재생종이를 사용해 나무를 덜 베고 숲을 살려야 동물도 잘살 수 있다고 일일이 설득했어요. 이제는 저희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왜 이걸 깨끗한 종이로 만들지 않느냐고 묻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물론 김보경 대표도 책공장더불어가 재생종이로만 책을 펴낼 수 있는 배경으로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도 홀로 지는’ 1인출판사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고려해야 할 독자층이 다양하고, 먹여 살려야 할 직원들도 많은 대형출판사는 매출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은 재생종이를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 이에 그는 독자들의 인식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 7권을 내며 ‘이 책만큼은 출판사들이 재생종이를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 적이 있어요. 미국에서 해리포터 판권을 가지고 있던 출판사가 그 바람을 일축하고 일반 종이로 내려 하자 미국 독자들이 ‘그렇다면 우리는 재생종이로 만든 캐나다 출판사의 책을 사겠다’고 목소리를 높여 결국 미국 출판사도 고집을 꺾었죠. 우리나라에서도 출판사들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깨어 있는 독자들이 나선다면 훨씬 더 많은 책이 재생종이로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만큼 숲도 동물도 살아나겠죠.”

한살림도 매달 내는 소식지를 오래 전부터 고지율 100%의 재생종이로 만들고 있고, 선물 카탈로그 및 각종 홍보물도 얼마 전부터는 재생종이를 이용하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한살림이 살린 나무는 소식지로만 계산해도 총 113톤. 그 덕분에 30년생 나무 2,721그루를 베지 않을 수 있었다. 선물 카탈로그를 비롯한 각종 홍보물까지 더하면 3,000그루는 살린 셈이다. 일반 종이로 만드는 것에 비하면 아무래도 보기에는 덜 좋았겠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고 지지해준 조합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숲이 점차 살아나고 그곳에 사는 동물도 행복해지는 세상. 책을 내는 출판사 모두가 책공장더불어 같고, 세상 모든 사람이 한살림 조합원 같다면 어떨까. 그런 세상이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글 사진 김현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