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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세상, 이제 시작입니다

2019.11.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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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호(626호) 소식지 내용입니다

비는 공평하지 않다. 튼튼한 지붕 아래 있을 때는 별것 아닌 듯 보이는 비도, 우산조차 없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게 다가온다. 물론 언젠가는 날이 개고 먹구름 뒤 푸른 하늘이 보이겠지만 당장 비를 맞고 있는 이들에겐 잠깐의 기다림조차 버겁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우산을 내밀어 줄 이의 존재다. 이미 비를 맞아봤고 그 혹독함을 아는 이의 우산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해밀학교는 아프리카계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다문화 가정을 대하는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먼저 마주했던 가수 김인순(인순이) 님이 2013년 만든 중등 대안학교다. 해밀학교의 이름에는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김 이사장과 해밀학교가 다문화 학생들에게 비를 피할 우산과 지붕이 되고, 그들이 맑게 갠 하늘을 맞이할 힘이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충분히 그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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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곳

강원도 홍천군 남면 용수리 41-10. 한때 한살림 여름·겨울 생명학교와 각종 행사가 열리던 이곳에서 또 한 번 잔치가 열렸다. 현재 이곳을 기숙사로 이용하는 해밀학교가 학부모와 마을 어르신을 모시고 시끌벅적하게 연 축제다. 성별도 피부색도 각양각색인 이들 모두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해밀학교는 다문화 학생과 비다문화 학생의 비중이 6:4에 이르는 기숙형 중등 대안학교다. 다문화 고등학생의 졸업률이 30%도 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한 김인순 이사장은 2012년 사단법인 ‘인순이와 좋은 사람들’을 설립하고 이듬해 해밀학교를 열었다. “저도 다문화가정 에서 자라면서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사춘기를 오래 겪었어요. 저같은 아이들이 단 몇 명이라도 덜 흔들리며 자랄 수 있도록 곁에서 있어주자고 시작했는데 일이 이렇게 커졌네요. 하하.”

아이들을 위한 마음은 그대로 학교 교육에 반영됐다. 해밀학교는 다문화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차별에도 흔들리지 않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스스로를 인정하는 인간상을 목표로 가르친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마음의 근육을 단단히 키워서 흔들리더라도 잘 살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점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나와 다른 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살고, ‘나’이기에 당당한 아이들로 자라기를, 나아가 사회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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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체와 함께합니다

해밀학교는 커리큘럼이 다양하다. 국·영·수 등 정규 과목을 가르치는 것은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지만 목숨과 직결된 수영이라든지,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4d프레임과 코딩, 학생들이 직접 꾸리고 전교생이 함께 가는 여행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중에서도 김이사장은 농사 수업을 가장 의미 있는 과목으로 꼽았다. “씨를 심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까지 긴 시간 공을 들여 농사지으며 생명의 신비와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어요. 또, 막상 그것을 장에 나가서 팔았을 때 생각보다 적은 돈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시는 지도 느끼는 시간이죠.”

농사 수업은 조금 특별한 선생님과 함께한다. 바로 한살림 생산자를 비롯한 마을 어르신들이다. ‘작황이 부진하면 호미 들고 찾아오시고, 트랙터가 필요하다고 하면 다음날 끌고 오시는’ 마을 어르신들을 이제는 아이들이 더 반긴다.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 마을 분들이 모두 환영해주셨어요. 장애인이다 뭐다 하며 땅값 떨어진다고 막으시는 분도 많은 세상인데 정말 감사했죠. 그래서 학교 행사가 있으면 마을어르신들을 초대해요. 작년 축제는 복면가왕이 아닌 남면가왕으로 꾸몄어요. 우리 학생들과 동네 어르신들이 걸쭉하게 노래 대결을 펼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해밀학교가 있는 홍천군 남면 명동리는 1999년 한살림 생산공동체에 가입, 2001년 전국 최초로 마을 전체를 ‘농약 없는 마을’로 선포했고 가공산지인 뫼내뜰영농조합이 있는, 한살림에는 의미가 큰 곳이다. 김 이사장은 한살림을 ‘생명이 생명답게 자라도록 돕는 곳’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밤에 너무 깜깜하더라고요. ‘벼도 잠을 잘 자야 해서 가로등을 세우지 않았다’는 말씀을 듣고 많이 놀랐죠. 여기서 자란 쌀이 한살림 조합원에게 간다는 것을 듣고는 학교를 찾는 사람들에게 한살림 홍보를 해요. ‘우리 마을에는 가로등이 없어요. 식물도 자야 하니까요. 이런 건 한살림에서만 먹을 수 있어요’ 하고요.”
너와 내가 다르지 않습니다

제주 난민 논란 등을 거치며 나와 너를 가르는 선이 명확해지는 이때, 김인순 이사장에게 다문화 학교의 의미를 물었다. “인구절벽 시대잖아요.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 중도입국, 이민, 난민, 탈북 등 이제는 다문화 시대로 갈 수 밖에 없어요. 다문화 아이들은 피든, 문화든 절반이라도 섞여 있잖아요. 이런 다문화 아이들도 배척한다면 아무 연고도 없는 이민, 난민은 어떻게 대하시려 하나요. 다문화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고 중간다리 역할을 하면 어떨까요. 새롭게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될 이들에게도, 기존의 우리에게도 더 안정되게 다문화 시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해밀학교에는 비다문화 학생이 40%에 이른다. 다문화-비다문화 학생들이 모여 싸움도 하고 우정도 나누는 작은 공동체를 통해 다문화 학생은 한국문화에 더 수월히 적응하고, 비다문화 학생은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나는 법을 운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고, 더 큰 우리라는 이름으로 하나 될 수 있는 세상.
헤밀학교 학생들이 졸업하고 만날 세상이 배운 바와 다르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