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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나락 한 알의 무게를 아는 삶으로

2019.10.07 (월)

조회수
1,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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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호(625호) 소식지 내용입니다

한 학교 선생님이 반 아이들을 데리고 한살림 생산지로 일손돕기를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EBS 수능강의에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서화를 보여주며 수업을 시작하고, 학교 축제에서 한살림물품을 파는 부스를 운영하기도 했다는 것도. 지리 교사로 아이들에게 땅의 소중함과 농사를 짓는 생산자의 고마움을 이야기한다는 최재희 휘문고 선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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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만난 무위당, 깊은 위로를 주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있다”던 장일순 선생의 말에 끌려 그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게 2014년. 이후 책을 찾아 읽으며 그의 사상을 공부했 고, 그 사상을 밑거름으로 생긴 한살림을 알게 되었다.

“장일순 선생이 쓰신 책을 읽고 삶의 흔적을 찾아보며 그분을 존경하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한살림의 철학과 가치가 이해되더라고요. 그 무렵 한 다리 건너 소개받은 유억근 천일염 생산자님을 뵙기 위해 신안으로 갔죠. 생산자님께 한살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우리 사회에 한살림 같은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장일순 선생의 말이 그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고 했다. 선생의 소박하고 꾸밈없는 말과 삶은 그가 힘들 때 위로가 되었 고, 교사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학생을 만나야 하는지 가르침을 주었다. “농사를 한번 지어봐야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출퇴근이 가능하면서 농장을 꾸릴 수 있는 남양주에서 2년 동안 살다 왔어요. 작은 텃밭을 빌려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일궜죠. 근데 농사란 게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흙을 만지며 땅을 일구는 삶이 주는 기쁨이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다.
스미듯 전하는 한살림 이야기

아이들을 가르칠 때 장일순 선생의 사상을 접목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교과 지식을 나열하는 수업보다 사상과 가치가 융합된 배움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당장 입시 준비를 하는 아이들에게 가치와 철학을 주입식으로 가르칠 수는 없어요. 그렇게 한다고 아이들이 듣지도 않고요. 한 가지씩 스미듯 수업 시간에 이야기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교과서에 원주는 기업도시, 혁신도시라고 설명해요. 그런 원주가 우리나라의 협동조합이 처음 시작된 곳이라는 말을 슬쩍 하면서 장일순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흘리는 거죠.” EBS에서 수능강의를 녹화할 때도 그랬다. 장일순 선생 서화를 보여주며 수업을 시작하자 담당 PD가 “아이돌 사진을 보여줘도 아이들이 집중할까 말까인데 장일순 서화가 웬말이냐”며 그를 말리기도 했다고.

“지리는 단순히 산맥과 강을 외우는 과목이 아니에요. 우리 일상을 구현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죠. 그래서 땅의 개념이 무척 중요해요. 땅은 모 든 생명의 근원이잖아요. 지금이야 땅의 주인이 다 따로 있지만, 지리학적 개념으로 보면 사실상 땅은 자연에서 저절로 생겨난 거예요. 그래서 지역마다 바람 종류가 다르고, 토질이 다릅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개념을 가르치면서 농사의 의미를 함께 이야기해요. 그러면서 체험도 곁들이면 좋겠다 싶어서 일손돕기도 기획하게 된 거예요.”

작년, 희망하는 사람만 몇 명 모아 가려던 일손돕기에는 집안 사정 때문에 불참한 2명을 빼고는 반 전체가 모두 다 참석했다고 한다. 그것도 토요일에, 개인 시간을 내어서 말이다. 학생도, 부모님도 선생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주 금당리공동체로 일손돕기를 다녀온 아이 들은 흙을 만지고 밟으며 빌딩숲에서 벗어나 자연을 누렸다.


“교과서 이외에 입체적인 지식을 전달해 주려면 교사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그러면서 동시에 신뢰받는 교사가 되어야 그 가르침이 아이들에게 영향이 있어요. 신뢰는 말만으로 얻을 수 없어요. 아이들은 제 행동을 다 봅니다.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고, 무엇을 이야기하는지까지요. 그런 신뢰가 밑바탕되어야 아이들에게 더 깊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요.”
그는 ‘지리’에 생명의 가치를 담아 풀어내는 작업을 꿈꾸고 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공간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풀어내는 것이다. 나락 한 알의 의미를 이야기했던 장일순 선생이 그래서 그에게 더욱 소중했다. 또한 땅에서 내는 소실의 값진 의미를 전하는 한살림이 아이들에게 조금 더 잘 알려지기를 바란다. 그 아이들이 지금은 그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자신이 먹을거리를 선택할 수 있을 때, 혼자 삶을 꾸려가야 할 때, 또는 아이를 키워야 할 때 한살림을 찾을 수 있 도록 말이다.

살아가면서 모든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모든 앎에 도달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밟고 사는 땅이 어디이고 우리가 먹는 것이 어떻게 오게 되는지 알면 좋겠다는 그. 그래서 가르침과 배움이 소중한 모양이다. 쌀 한 톨의 무게를 아는 우리가 또 다른 우리에게 그 의미를 전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정성과 열정으로 학생들을 만나는 그의 기운이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용기와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