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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농업이 존대 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2019.04.2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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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감수성은 경험에 정비례한다. 대개 그렇다. 자의든 타의든 직접 고통을 겪었거나 고통받는 이와 가까이해본 사람만이 누군가의 고통에 민감히 감응할 수 있다.
1987년 수세폐지운동, 2002년 중국산 마늘 긴급수입제한조치, 2004년 세계무역기구(WTO) 쌀 협상,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2008년 미국산쇠고기 수입 협상, 2013년 일본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수입금지조치 소송 등. 수많은 고통의 현장에 그가 있었다. 통상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국가 간 이해득실을 셈하는 거래에서 주로 ‘해(害)’와 ‘실(失)’의 처지에 놓여 왔던 농민들의 손을 잡아준 이. 바로 송기호 변호사다.
농부의 아들이 서울대에 들어갔고 우여곡절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동네마다 하나씩 있을 법한 시골 소년의 성공담은 그러나 이후 여느 이야기와 조금은 다르게 흘러갔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 갑자기 농촌에 내려와 농사일과 농촌운동에 뛰어들지 않나, 사법고시에 합격해 기 좀 펴고 사나 했더니 다시 돈 안 되는 소송에만 매달리지 않나. 그의 걸음은 여러모로 일반적이지 않았다. “대학 때 소위 운동권이라 불리던 이들 중에서도 농촌운동을 선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낙후된 것으로 여겨지는 농업과 농민의 가치가 운동현장에서도 경시당한 셈이죠. 대학 때 농활을 다니며 농촌을 향한 마음이 커졌어요. 졸업 이후 귀농해 YMCA전국연맹에서 농민 교육 프로그램의 현장 실무자로도 일하고, 전남 농민조직의 정책실장까지 맡았죠. 농사까지 잘 지었으면 계속 농촌에 있었을 텐데 실패하고 건강까지 나빠져 결국 서울로 돌아왔어요.”

별난 선택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서울에서 1년간 은행에서 일하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또다시 어려운 길로 향했다. 그 길의 어귀에 고통받는 이들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농업전문 변호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에요. 마침 그때 쌀 협상 문제가 대두되며 농민들이 찾아왔어요. 농촌운동을 같이 하던 분들이고, 그분들이 얼마나 고통 받으며 살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같이 할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다니던 로펌을 나와 농업 관련 변호사 사무실을 내게 됐죠. 이후 통상이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 통상전문 변호사의 길을 걸어왔어요.”


가락시장에서 한살림다운 유통구조를 꿈꾸다

송기호 변호사의 ‘수륜법률사무소’는 3년 전 서울시 송파구 가락시장 안에 사무실을 냈다. 송기호 변호사는 “소위 강남3구로 분류되는 송파구이지만 송파 세 모녀 사건처럼 여러 삶, 소외된 공간이 존재한다”며 “농민의 고통을 바로 느낄 수 있는 가락시장도 대표적인 사례”라고 사무실 입지 선정의 이유를 밝혔다.

무엇보다 가락시장은 거대 자본 본위의 유통구조에 보호받지 못하는 농민, 소비자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 곳이기에 의미가 남달랐다. “가락시장은 전국의 농민들과 9개 도매법인, 1,500여 중도매인이 모여 연간 5조 원 규모의 농수산물을 거래하는 곳이에요. 만약 농민과 중도매인 사이에 농산물에 대한 신뢰가 충분히 있다면 굳이 농민들이 농산물을 트럭에 싣고 전국에서 오지 않아도 온라인 상에서 거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9개 도매법인이 사실상 독점하며 농산물 가격을 좌지우지하고 있는데, 단계와 마진을 최소화한 농민 주도의 유통구조가 자리 잡으면 농민은 더 많은 이익을 얻고 소비자는 그만큼 싸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상호 신뢰에 기반한 거래, 농민 주도의 직거래구조 등 그가 이야기한 대안이 상당 부분 한살림의 현재와 겹쳐 보였다. 송기호 변호사는 “한살림연합 감사를 지낼 때 소비자가 지불한 가격 중 70%가 넘는 금액이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한살림처럼 농민이 생산하는 가치가 소비자에게 잘 전달되는 유통구조가 전국에 자리 잡으면 농업문제 대부분이 해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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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농업 중심의 통상질서가 필요한 때

송기호 변호사를 만난 때는 미국의 GM감자 수입 승인이 코앞으로 다가온 때였다. 통상의 방향이 일반 국민의 바람과 반대로 흘러가는 까닭을 묻자 송기호 변호사는 ‘대기업·수출 중심의 통상’을 지적했다.

“이미 과잉개방의 시대예요. 실제로 식량자급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 농업의 토대를 지키고 농민의 삶을 지킬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통상도 그런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어요. 통상을 결정하는 주체가 대기업 위주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현대자동차 덕분에 먹고사는 사람도 많겠죠. 하지만 농업이라는 토대가 흔들리게 되면 전체 국민의 삶이 위태로워지지 않을까요. 이제는 대기업, 수출 중심의 통상을 농민을 포함한 국민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는 때인 거죠.”

농민과 농업을 위해 좁은 길을 오래도록 걸어온 송기호 변호사는 앞으로 자기 주변의 동네 사람들과 골목민주주의를 만들어 갈 계획이다. 물론 오랜 동료였던 한살림 조합원과 함께다.

“요즘 송파구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데 한살림도 함께하고 있어요. 이처럼 한살림 조합원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와 골목을 주시하고 따뜻하게 챙겼으면 좋겠어요. 좋은 먹거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인 것도 좋지만 한살림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한살림이 지닌 모심과 살림의 가치를 실현해내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과 손잡는다면 더욱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

글ㆍ사진 김현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