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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살림의 창] 버리지 못한 것들의 의미

2019.02.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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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여유로워지면서 사람들은 풍족함이 만들어내는 폐해를 의식하게 됐습니다.물질의 ‘결핍’보다 ‘과잉’을 견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쌓고 모으는 것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치울 때 또한 쌓을 때와 비슷한 방법으로 노력합니다. 해독주스를 만들기 위해 믹서기를 사고,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기 위해 책과 도구를 사들입니다. 내면에서 진정으로 바랐던 ‘치움’이 과연 이러한 형태였을까요. 이것저것 가져다 버려도 마음이 번잡해진다면 그것은 과연 바른 방향일까요.
진정한 미니멀라이프는 치워서 생겨난 결과가 아닌, 남은 것을 되돌아보는 자세에서 비롯됩니다. 내 삶에서 뺄 수 있을 때까지 빼다가 본질만 남아 더 이상 빼지 못하겠다는 때가 바로 미니멀입니다. 이쯤 되면 남은 것들의 역할이 이전보다 뚜렷해지고 그것들의 가치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래서 미니멀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소박함’이 아니라 ‘본질’입니다. 소박함은 미니멀을 추구한 결과의 겉모습일 뿐입니다. 소박함이라는 결과만을 목적으로 하면 아무리 버려도 내면이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미니멀을 통해 본질의 가치를 깨닫고 남은 것에 대해 애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미니멀라이프의 시작은 청소입니다. 청소는 무엇을 치우고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옷장을 정리하면서 안 입는 옷을 버리다보면 결국 자신을 잘 표현하거나 즐겨 입는 것만 남습니다. 또한, 치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취향이 부각되며 남은 것들에 대한 애정이 커집니다. 그래서 올바른 청소는 효율적으로 빨리 끝내버려야 하는 일이 아닌, 스스로 삶을 돌아보고 채우기 위한 과정입니다.
또한 청소는 오늘의 소중함과 내일의 기대감을 몸으로 인식하게 해줍니다. 끊임없이 정리해도 버려야 할 것들이 계속 나오는 것은 그곳에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분비물은 생명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듯, 쓰레기도 공간에 삶이 있다는 뜻입니다. 일로서의 청소가 아닌 삶을 되돌아보고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청소를 한다면 오늘을 살고 내일을 바라는 하루하루가 뜻깊게 변할 것입니다.

글을 쓴 임성민은 <청소 끝에 철학>, <지식인의 옷장>등의 책을 썼으며, 현재 패션컨설팅회사 객원연구원과 경희대학교 의상학과 겸임교수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