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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생명의 땅 살리는 생산자 이야기

2019.01.29 (화)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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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생명을 품고 길러내는 고마운 존재이자 그 자체가 생명이기도 하다. 이 진리를 일찌감치 깨달았던 한살림 생산자들은 오랜 세월 ‘땅을 살리는 농사’를 실천해왔다.


경북 의성 쌍호공동체 진상국 생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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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에게 잠시 빌린 땅이기에

“해로운 걸 주면 땅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는 것 같아. ‘뭐든 심어봐라, 어디 잘 자라나보자’ 이렇게.” 의성 쌍호공동체 진상국 생산자는 땅을 이야기할 때 언제나 사람에 비춰 말한다. 땅을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이라 여기는 그의 신념이 엿보인다.

그가 처음부터 땅을 살리는 농사를 지었던 건 아니다. 수십 년 농사 인생의 시작은 남들처럼 화학비료·농약와 함께였다. 당시엔 땅의 개성과 상관없이 농사를 지으며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는 당연한 방법이었다. 그러다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회를 통해 시작된 생명운동이 그를 유기농사로 이끌었다. “관행농사는 수확량 등을 예측할 수있는데, 이건 답이 있어야 말이지.” 몸과 마음에 배어있던기존 방식을 완전히 버리고 ‘답이 없는 농사’를 시작했으니 그의 고생길은 예정된 것이었다.

“한번은 청보리를 갈아서 논에 넣었는데 가스가 나오는바람에 모가 벌겋게 다 죽어버렸어. 좋은 거름을 줬는데 왜 그럴까 싶었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화학농약과 화학비료의 빈자리를 자신의 눈과 손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수확량도 확 줄었다. 그럼에도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농사꾼이기에 땅에도 인간에게도 해로운 농약을 칠 수 없었다. “이 땅을 우리가 잠깐 빌렸을 뿐이지. 결국은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니까.” 고집스럽게 ‘땅살림’을 이어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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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농사의 밑거름, 자급퇴비

유기농사의 기본은 ‘땅심’을 키우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사는 데 밥이 중요하듯 땅에도 ‘거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순환’할 수 있도록 거름 재료를 주변에서 찾았다. “소란 놈도 사람처럼 좋은 이불을 깔아주면 잘 자고 잘 쌀 거 아냐. 그러면 우리는 좋은 거름을 얻게 되고. 이런 게 다 순환이지.” 인근 낙동강변 버드나무를 파쇄해 축사에 깔아준 후 유기사료를 먹여 키운 소의 배설물과 함께 6개월 정도 모은다. 여기에 미생물을 몇 차례 더 섞어 발효시키면 자급퇴비가 만들어진다.

“첫해는 땅에 필요한 양분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서 무작정 많이 줬어. 근데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하잖아. 땅도 사람이랑 똑같더라고.” 직접 만든 퇴비를 처음 사용한 2004년에는 효과가 없었지만, 몇 년간 지속하니 양파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농약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했던 투구새우도 논바닥을 빨빨대며 기어 다녔다. 지금은 거름을 초기보다 적게 넣는다. 땅심은 유기물 함량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해마다 받는 인증검사에서도 유기물 함량이 높게 측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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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공동체

그의 유기농사는 쌍호공동체의 역사와 함께했다. 1979년 결성된 이후 소·가족농, 다품종 원칙을 고수해왔다. 단일품종을 대량 생산하면 비료나 기계에 의존하기 쉽고, 생명운동의 가치를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양한 작물을 자급자족하듯 농사짓는데, 한살림에는 쌀과 양파만 공급한다. “욕심내지 않고 적게 짓되, 우리가 생산하는 물품은 소비자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해.” 그가 다른 생산자들에게 늘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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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호공동체는 목적, 의무, 생산관리 등을 규정한 회원규약에 따라 운영하고, 매년 활동계획서를 작성한다. 특히 474차에 이르는 월례회의는 창립 후 한 번도 끊긴 적이없다. 그 회의록은 지난 40년의 역사이자, 땅의 기록인 셈. 회의록에는 지난 4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어 학자들이 연구자료로 빌려 갈 정도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기록을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우리가 이제 많이 늙었어. 근데 이어받을 사람이 없어.” 학술자료가 아니라 몸으로 깨우친 유기농사이기에, 영농후계자의 부재는 더욱더 안타깝다. 그는 본인이 없는 다음 세대에도 땅이 잘 보존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땅이 무슨 죄야. 인간의 욕심 때문에 그리 된 것이지. 설사 나쁜 땅이라도 노력하면 다시 좋은 땅으로 만들 수 있어.” 진상국 생산자에게 땅은 좋고 나쁨이 없다. 그저 귀히 여기고 살려야 하는 생명이다. 점점 죽어가는 땅을 살리기 위한 한살림 생산자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글 국명희 편집부 사진 류관희
[한살림 생산자들의 땅심 살리는 법]
한살림 생산지에서는 의성 쌍호공동체처럼 퇴비를 자가제조 합니다. 주로 수피, 톱밥, 쌀겨, 깻묵 등을
발효시켜 퇴비로 활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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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비작물
식물의 줄기와 잎, 뿌리 등을 그대로 토양의 거름으로 사용하기 위해 생산지에서는 헤어리베치, 보리, 호밀 등의 녹비 작물을 가꿉니다. 작물이 심긴 채로 밭을 갈면 토양의 화학성을 개선하고, 미생물을 활성화시킵니다.
생산자연합회 에서는 호밀 채종포를 운영해 생산자들에게 나누고 있습니다. 부여연합회 수박작목모임 에서는 녹비 작물을 심어야만 수박 약정을 받을 수 있는 규정이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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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열소독
하우스에서 토양 살균제, 살충제를 대신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태양열 소독입니다. 더운 여름, 쌀겨와 석회고토를 섞은 땅을 갈아엎고 작은 이랑을 만들어 비닐을 덮은 뒤 한 달 정도 두면 토양의 온도가 높아져 세균 및 해충, 균류, 선충 등을 죽이는 데 효과적입니다.
성주 유기농 참외 생산지 는 참외를 심기 전 병해충을 방제하기 위해 태양열 소독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