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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살림이야기

우리 모두는 사람입니다

2019.01.0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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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은 존재를 규정한다. 규정의 주체가 타자일 때는 나에 대한 그의 해석이, 주체가 나일 때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자아상이 호칭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그 호칭이 다시 나를 재구성한다. 이현주 목사는 1976년 죽변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한 이후 줄곧 목사로 불려왔다. 물론 시대의 부름에 조응해온 그의 삶을 생각해볼 때 목사라는 호칭에만 그를 매어두기엔 아쉬운 측면이 있다.
동서양과 유불선을 아우르며 직접 저술하거나 번역한 책을 일 년이 멀다 하고 펴내는 작가이자 번역문학가, 이미 1964년에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동화 작가이자 시인, 각종 단체와 학교에서 성찰의 결과를 나누는 강사, 그리고 한살림의 어른이자 시대의 스승….
그를 일컫는 말은 차고도 넘치지만 정작 그는 호칭 자체에 큰 의의를 두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저서마다 쓰이는 필명도 매번 다르다.
장일순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관옥(觀玉)’이라 쓸 때도, 이름이 없는 이들을 통칭하는 ‘아무개’ 또는 같은 뜻의 한자인 ‘무무(无無)’라 할 때도 있다. “뭐라고 부르든 상관있나. 굳이 ‘너 누구냐’ 물으면 ‘나는 사람이야’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 나를 ‘사람’이라고 부르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의 형제가 되잖아. 종교나 인종 아무 상관없이.”
스스로를 ‘사람’이라 부르는 이현주 목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볕이 좋던 어느 날, ‘말씀과 밥의 집’이라는 팻말이 붙은 순천시 행금길 자택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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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이야기해줘요. 못 알아듣는 것은 되물을 테니 번거롭더라도 양해해주고. 내가 귀가 많이 어두워. 올해 들어서 갑자기 나빠졌어. 아니, 나빠졌다기 보다는 달라졌어. 말의 습관을 잘 들이는 것이 이렇게 어려워.” 대화의 첫머리에서 손순히 양해를 구하는 모습이나 일상의 말 매무새를 가만히 다듬는 모습에서 그의 단면을 엿본 듯했다.

우리 모두 ‘사람’이다

이현주 목사는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청년이 되며 예수와 자신의 관계를 분명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예수는 내가 모실 만한 스승’이라는 결론을 지었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스승을 모신다는 것은 스승이 가르친 대로 사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예수가 ‘나는 사람이다’라고 한 것이 마음에 박혔다.
“예수께서 ‘사람들은 나를 아브라함의 자손, 즉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나는 사람이다’라고 자주 말씀하시거든. 어떠어떠하다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은 그냥 사람. 나도 모든 사람을 그렇게 보고 싶어. 내가 어떤 사람을 보고 ‘저 사람 얌체네’라고 하면 그 사람은 내 안에서 얌체가 되는 거잖아. 그런데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 내가 얌체를 봤을 뿐이지 그 사람 자체가 얌체는 아니지. 사람은 그렇게 한두 마디 말로 어떻다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그 하나가 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존재해왔겠어. 그만큼 깊은 존재가 바로 사람이야. 그렇게 보면 노자도 사람이고 석가도 사람이니 다를 게 없어. 강물이 흘러가다 보면 다른 물줄기하고 만나잖아. 남한강, 북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나 한강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강이 되고 바다가 되면 너와 내가 없어져. 모두가 ‘사람’이 되는 거지.”
『이 아무개의 장자산책』, 『기독교인이 읽는 금강경』, 『틱낫한 명상』, 『내 인생의 첫 고전, 논어』 등 목사임에도 종교와 사상을 넘나드는 책을 펴낼 수 있었던 것은 그 대상 모두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모든 이가 ‘사람’이기에 또한 ‘스승’이 될 수 있었다.
“소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스승이 누구인지가 중요해. 돌이켜보면 예수라는 마지막 스승이 ‘네가 정말 내 제자가 되고 나와 함께 가려면 이런 사람들을 만나봐라. 그럼 도움이 될 거다’라고 하시며 노자도 소개하고 석가도 만나게 하신 게 아닌가 싶어.”
이현주 목사는 장일순 선생을 가리켜 ‘동시대를 살아간 몇 안되는 스승’이라고 설명했다. 서른네살에 만나 장일순 선생이 작고할 때까지 열다섯 해 동안을 가까이 지낸 그는 문답 형식으로 묶은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를 함께 펴냈으며 권정생, 이철수 등을 장일순 선생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예수가 주선해서 만나게 되었고 선생님도 나를 기억하시고 좋아하셨어. 마지막 스승인 예수와의 만남 전에 마지막으로 모신 스승이라고 봐도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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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을 돌아보라

이현주 목사는 그가 스승이라 부르는 장일순 선생의 생각을 이어받은 한살림의 현재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살림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이, 사업과 운동 모두 위기라고 말하는 이가 늘었다는 말에 그는 “바탕을 돌아보라”라고 전했다.
“한살림도 하나의 생명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명이라면 매 순간 달라지게 마련이잖아. 규모가 커지면서 예전 같지 않게 되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니 충격 받을 필요 없어. 나무도 처음에 나올 때는 아주 깨끗하게 쑥 나오지만 고목이 되면 벌레도 먹고, 부러지기도 하잖아. 다만 어느 방향으로 변화할 것인가를 각자 고민해야겠지. 우리가 이 일을 왜 시작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를 돌이켜보고 처음 떠났을 때 마음과 많이 달라졌다 생각하면 다시 돌아가면 되는 거야.”
이어 그는 한살림이 조직의 생멸에 연연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함께하는 이들이 깊어지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살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라는 점이 하나 있어. 한살림에서 일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새에 ‘내가 한살림 덕분에 사람 됐네’라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사람이 됐다는 것이 다른 게 아니야. 골짜기에 흘렀던 계곡이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것처럼 좁아터졌던 사람이 넓어지고, 얕았던 사람이 깊어지는 거지. 개울물은 시끄러운데 강물만 해도 조용히 흐르잖아. 많은 개울이 만나 강이 되고 바다가 될 수 있는 곳이 한살림이라면 좋지 않을까. 사람이 결국 한살림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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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잘못한 게 없다

길 가며 스치는 모두가 저마다의 불안과 화를 쌓아두고 있는 듯한 요즘, 시대의 어른이자 스승으로서 동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나누고픈 말을 마지막으로 청했다.
“본인들이 어떻게 들을지는 모르지만 모든 사람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당신은 크게 잘못한 게 없다. 당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해주고 싶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말라’는 말. 우리 모두가 ‘사람’이잖아. 깊고도 깊은 존재.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글 김현준 사진 윤연진 편집부